2026년 1학기 근현대속의한국 기말시험 과제물(일제시기 사회의 모습, 한국인 삶의 모습)
⑵ 󰡔근현대 속의 한국󰡕 교재 전체를 참조하여 ‘일제시기 한국인 삶의 모습’을 설명해주세요.
⑶ ⑴, ⑵번 답안을 바탕으로, ‘내가 생각하는 일제시기’ 사회의 모습을 자유롭게 정리해주세요.
- 목 차 -
⑴ 󰡔근현대 속의 한국󰡕 교재 전체를 참조하여 ‘일제시기 사회’의 모습을 설명해주세요.
⑵ 󰡔근현대 속의 한국󰡕 교재 전체를 참조하여 ‘일제시기 한국인 삶의 모습’을 설명해주세요.
⑶ ⑴, ⑵번 답안을 바탕으로, ‘내가 생각하는 일제시기’ 사회의 모습을 자유롭게 정리해주세요.
참고문헌
** 함께 제공되는 참고자료 한글파일 **
1. 내가 생각하는 일제시기 사회상.hwp
2. 내가 생각하는 일제시기 사회상2.hwp
3. 일제시기 사회의 모습.hwp
4. 일제시기 사회의 모습2.hwp
5. 일제시기 한국인 삶의 모습.hwp
6. 일제시기 한국인 삶의 모습2.hwp
개화기와 일제시기 의생활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양복의 유행이다. 전통한복은 불편한 점이 있어 좀 더 편한 개량한복으로 바뀐 것이다. 1910년대에는 한복을 즐겨 입자는 주장과 함께 한복개량운동이 일어났다. 짧은 검정 통치마에 흰 저고리를 입는 스타일의 1920~1930년대 개량한복은 한동안 신여성의 상징이 되었다. 단발령으로 일본 이발관, 양복점, 구두와 모자 가게 등이 많은 돈을 벌었다. 반대로 정부 정책에 역행하여 여전히 갓, 망건, 탕건 등을 파는 사람들은 수익이 많이 줄었을 것이다. 한복 대신 양복을 입고 상투는 잘라 단발을 하고 모자를 썼으니, 마지막으로 신발의 변화도 살펴봐야 할 것이다. 양복에는 구두를 신게 되지만, 전통적으로 짚신, 비단신, 가죽신, 나막신을 신던 조선인은 1910년대 후반부터 고무신을 신게 되었다.
쌀은 조선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곡물이다. 조선은 전통적인 농업사회이므로 쌀 생산량이 국부의 척도이자 일반백성의 생존권과 직결되는 것이다. 일제는 토지조사업과 산민증산계획 등을 통해 조선에서 토지와 쌀을 수탈하고 생산된 쌀은 일본으로 송출했다. 특히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으로 전시운영체제로 들어가면서 일제는 쌀 배끕을 황국신민화의 수단으로 활용하면서 쌀이 아닌 만주속이라는 잡곡을 만주에서 들여와 대용식으로 장려하였다. 이렇게 쌀이 귀해지자 쌀밥은 잘해야 생일이나 명절에나 먹을 수 있었고, 주식은 꽁보리밥, 잡곡, 감자, 강냉이 따위로 바뀌었다. 그러나 농업생산구조가 쌀 생산 중심이 되면서 잡곡 생산도 이전보다 훨씬 줄어들어 제대로 먹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 소나무 껍질 따위를 먹는 지경에 이르렀다.
일본 음식 또한 개화기 이후 널리 퍼졌다. 우동, 단팥죽, 일본 과자, 다꾸앙, 어묵, 초밥 등이 그것이다. 일본 요릿집은 일본 사람이 살던 진고개에 1895년 처음 생긴 이래, 일본 음식은 차츰 조선인에게도 익숙해졌다. 흥미로운 것은 일제강점기 아지노모도라는 음식에 감칠맛을 내는 화학조미료가 들어오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는 사실이다. 이후 해방 후에도 아지노모도는 부유층의 관심을 받으며 반찬에 뿌리고, 왜간장에 밥을 비며 먹는 조미료로 사용되며, 사람들의 입맛을 길들여놓았다.
조선의 전통적인 집은 기와집, 초가집으로 대부분의 백성들은 초가집에서 생활했다. 집은 의류나 음식과는 달리 고가의 상품이고 요즘의 청약제도나 대출 같은 정책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보급이 용하므로 일반 백성들이 쉽게 살 수 없다. 따라서 개화기와 일제강점기의 생활문화가 크게 바뀐 것과 비교하면 주거 변화는 더딜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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