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해석
1. 꿈의 목적론적 기능과 특징
꿈은 우리가 잠든 사이에 일어나는 특수한 정신기능의 일부이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꿈꾸기 전날이라든가 그 이전에 그 사람이 생각한 것, 본 것, 기분, 인상 같은 과거의 경험과 관계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꿈꾼 사람의 마음에 변화를 일으켜 꿈꾼 뒤에도 어떤 특수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현재와 미래에 작용한다. 꿈은 일반적으로 관념표상의 연결이 논리적이 아니기 때문에 기억에 되살리기 어렵다. 꿈을 하나도 안 꾼다는 사람이 많지만 대개는 꿈을 꾸면서도 기억하지 못할 뿐이다.
의식이 계속 이를 무시하면 무의식의 형상은 더욱더 흉측한 꿈으로 변한다. 반대로 현실을 변화시키면 꿈의 내용도 그에 따라 바뀌게 된다.
정신분석은 무의식적 사고가 꿈 작업에 의해 왜곡된다고 보지만, 분석심리학에서 무의식은 왜곡될 수 없는 인류의 지혜와 기억이 담긴 신비로운 영역이다. 따라서 꿈이 전하는 이야기를 경청하고 그에 따라 삶을 바꾸어나가야 한다.
융은 무의식의 힘을 믿었다. 무의식에는 의식적 자아보다 내 진정한 모습을 잘 아는 원형이 존재하며, 그것을 자기라고 불렀다. 이런 자기에 이르는 긴 여정을 개성화과정이라 불렀으며, 무의식과 대화를 통해 의식적 노력을 통해 수행해야 하는 과제이다.
어떠한 꿈도 똑같은 꿈이란 없다. 어떤 꿈의 상도 똑같은 뜻을 가지지 않는다. ‘걸상’이 꿈에 나왔으면 그 뜻이 누구에게나 사람이 걸터앉는 ‘걸상’의 뜻을 가지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개인적인 의미가 부가될 것이다. 그 걸상은 어떤 사람에게는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소중한 보물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좋아하는 여인이 앉았던 걸상이고 또 다른 사람에게는 다른 뜻을 가진 걸상이다. 그러므로 이런 일회적인 꿈의 특성을 알려면 무엇보다도 우리는 꿈을 꾼 사람에게 “거기에 대해서 무엇이 연상되는가”, “걸상이라 하면 무엇이 생각나는가”를 물어서 개인적인 연상을 수집하여야 한다. 꿈꾼 사람의 도움 없이 꿈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신화적인 꿈에 이르러서는 거의가 ‘생각지도 못한’, ‘엉뚱한’ 내용들이므로 개인적인 연상을 물어도 없는 수가 있고, 있다 하더라도 그 꿈의 의미를 파악하는데는 집단적인 연상 자료가 중요한 것이다.
그 꿈에서 나타나는 세계는 우리의 개인적인 자아의식과는 전혀 다른 ‘나’안에 들어 있는 타자(他者), 하나의 객체정신(客體精神)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화적인 꿈은 경우에 따라서는 그 개인의 연상 없이도 신화적인 자료로서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꿈이 현실의 어떤 의식 상황을 보상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하므로 꿈을 꾼 사람이 처하고 있는 현실이라든가 현실에 대한 태도 같은 것을 알아볼 필요는 있다.
2. 꿈의 해석에 대한 두 측면
이리하여 융은 꿈의 해석을 두 가지 측면에서 실시하고자 한다. 하나는 꿈의 내용을 바깥 현실이나 의식의 상황과의 관계에서 보고, 다른 하나는 꿈의 요소 자체가 갖는 의미를 중심으로 보는 것이다.
전자를 객관단계에서의 해석이라 하고, 후자를 주관단계에 아는 사람이나 현실과 관계있는 사건이 나타났을 때 그것이 그 꿈을 꾼 사람의 실제적인 현실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다.
현실에서는 전혀 용납하지 못하는 사이의 사람이 꿈에서는 화해를 청하는 수가 있고, 전혀 다른 좋은 성격의 측면을 나타내는 수가 있다. 현실에서는 전적으로 믿어 마지않지만 꿈에서는 의심의 대상이 되는 수가 있다. 꿈이 현실적인 관계의 어떤 것을 수정하고 있는가, 밖의 대상에 대하여 의식에서 느끼고 판단하고 있는 것을 어떻게 고쳐 나가고 있는가를 살펴보고 그것을 깨달음으로써 현실적인 의식의 태도를 바꾸어 나가는 것이다.
주관단계에서의 해석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꿈에 나오는 여러 대상이나 사건을 비록 그것이 현실과 관계가 있다고 하더라도, 꿈꾼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심리적 요소들, 즉 무의식적인 경향, 감정, 생각 등의 상징적 표현으로 보고 그것을 깨달아 의식에 동화시킴으로써 의식의 시야를 넓히는 해석이다.
이 두 가지 해석은 어느 꿈에서나 적용되지만 융에 있어서는 후자를 더 강조하는 것이 특징이다. 예를 들면 꿈에 “어떤 친구가 와서 나에게 악수를 청한다. 나는 이를 뿌리치고 가버린다”고 할 때, 우리는 먼저 그 친구에 대한 개인적인 연상을 묻는다. “그 친구는 학생 때 돈을 헤프게 쓰고 공연히 자기를 내세우려 하고 남의 일에 간섭을 하고 남을 휘두르려고 해서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꿈에 나왔는지 모르겠다”고 했을 때, 우리는 이 꿈을 꾼 사람과 꿈에 나온 친구와는 본래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현실적인 사실을 알게 되고, 이런 현실적인 사실과 꿈의 사실과는 그리 틀리지 않았다는 현실적인 사실을 알게 되고, 이런 현실적인 사실과 꿈의 사실과는 그리 틀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친구를 만난 지는 이미 오래고 보면, 이 꿈이 현재의 어떤 상황과 관계가 있는지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꿈을 꾸기 전날의 상황이나 최근의 상황을 물어 본다.
그러나 별다른 일이 없었다고 하는 경우도 있겠고, 사실은 전날 동료와 다툰 일이 있다고 할지도 모른다. 후자의 경우, 우리는 그가 옛날 친구에게 느낀 것과 같은 감정을 현재의 동료에게 느끼고 있고 동료에게서 그 친구와 같은 면을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추측에 불과하다. 꿈을 꾼 사람에게 좀더 자세히 현재의 동료에 관한 것을 물어보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현실에서의 인간관계를 비교적 알고 이 꿈에 나오는 친구와의 관계가 현재의 동료와의 갈등과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하더라도, 이것으로는 아직 꿈의 본질을 이해하기에 불충분하다. 왜냐하면 꿈은 현실의 갈등을 모사하고 반영하는 거울일 뿐 아니라, 바로 갈등의 소재를 가르쳐 주는, 갈등을 산출하는 모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꿈에 나오는 여러 상은 그 하나하나가 모두 무의식적인 콤플렉스이다. ‘꿈속의 나’ 조차도 하나의 콤플렉스이다. 이 꿈에 나오는 “돈을 헤프게 쓰고 공연히 자기를 내세우고 남을 휘두르려는 친구”는 현실에서의 그 친구의 일면일지 몰라도 동시에 꿈꾼 사람의 무의식 속에 있는 그러한 특징을 가진 콤플렉스라고 할 수 있다. 무의식에서는 이런 ‘그림자’가 꿈의 자아에 대하여 손을 내민다. 다시 말해서 ‘나’에 의하여 받아들여지기를 촉구하는데 ‘나’는 이를 거절하고 이런 측면을 외면하려고 한다.
다시 말해서 나의 마음속에는 자기 주장이 심하고 미숙한 외향적인 측면이 있는데, 동시에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경향도 있어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이제 친구에게뿐 아니라 자기 마음속에 있으면서 자기도 모르고 있는 콤플렉스를 인식해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을 꿈은 가르쳐 주고 있다. 또한 그러한 인식에 대하여 꿈을 꾼 사람 내부에 저항이 있다는 것도 가르쳐 주고 있다. 또한 그러한 인식에 대하여 꿈을 꾼 사람 내부에 저항이 있다는 것도 가르쳐 주고 있다. 이리하여 주관단계에서의 꿈의 해석은 지금까지 외부의 대상에 투사되어 온 여러 가지 무의식적인 요소를 자기 마음속에서 발견하고 이를 인식하게 함으로써 의식을 넓히고 보다 성숙한 단계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하는데 크게 기여한다. 만일에 우리가 객관단계에서의 해석만을 가한다면 밖의 대상을 향한 무의식의 투사를 충분히 되돌려서 나의 것으로 삼을 수 없게 되고 언제나 현실에 대한 투사를 통한 관계가 남아 있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객관단계의 해석은 흔히 주관단계의 해석을 하기 위한 예비단계인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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