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벤스의 생애과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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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루벤스의 생애과 그림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Ⅲ. 루벤스
1. 루벤스의 생애 (1577~1640)
루벤스는 벨기에의 큰 도시 안트베르펜의 상류 부르주아 가정에서 태어났다. 이곳에서 루벤스는 라틴어 학교에서 고전 교육을 받으며 가톨릭교도로 자랐다. 14살 때부터는 당시의 여러 유명한 화가들에게 미술 수업을 받았다. 훗날 그는 이탈리아로 가서 궁정에서 일하면서 수없이 많은 모사를 통해 이탈리아 미술의 유산을 흡수했다.
직접 보고 연구한 대가들의 영향과 타고난 재능으로 루벤스는 이탈리아에서 이미 명성을 얻었고, 고향으로 돌아온 다음해인 1609년, 궁정화가가 되어 재능과 명성, 열정을 동시에 겸비한 화가로서의 자질을 십분 발휘했다(2000점 이상의 작품을 남김). 1626년에 아내가 사망하고 혼자 지내던 루벤스는 53세가 된 1630년에 16세의 엘렌 푸르망과 결혼했다. 1635년에 그는 스텐 성을 구입하여 시골로 내려갔고, 말년을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가족의 모습과 성 주위 풍경을 화폭에 담으며 지낸다.
< 루벤스 저택 >
루벤스 경은 “화가 중의 왕자이며 왕자들 중의 화가”라고 할 수 있을 만큼, 17세기 시대에 최고의 성공과 명예를 누렸으며 여러 왕정들이 필요로 하는 화가였다. 루벤스는 영국의 찰스 1세에게 기사 작위를 받게 되었고 그의 호화로운 집은 그의 명성과 지위를 반영하도록 디자인되었다. 루벤스는 자신의 저택의 일부 디자인을 직접 하기도 했는데, 거리를 향하고 있는 외관은 상당히 절제되어 있지만 내부의 안뜰은 호화로운 이탈리아 양식으로 지어졌다. 그는 죽을 때까지 재산이나 명성이 기울었던 적이 없고, 말년에는 그림을 주문 받거나 팔 필요가 없을 정도로 부유했으며 굴곡이 있었던 렘브란트의 삶과는 달리 처음부터 끝까지 순탄한 삶을 살았다. 그는 그의 나이 63세 되는 1640년에 통풍으로 인한 심장발작으로 사망했다.
2. 종교와 관련된 그림 - 십자가를 세움
17세기 내내 이어진 종교 전쟁으로 교회와 미술품들이 파손되어 새로운 작품에 대한 수요가 많아졌다. 루벤스는 그의 이력 초기부터 제단화를 비롯한 기독교 주제 그림을 많이 그렸다. 그 중 벨기에 최대의 교회인 안트베르펜 대성당에 있는 [십자가를 세움]은 이 분야의 대표작이다. 이 작품들은 일본 애니메이션으로 더 친숙한 위다(Ouida)의 동화 [플랜더스의 개]에서 화가를 꿈꾸던 가난한 소년 네로가 보고 싶어하며, 이 작품을 볼 수 있다면 죽어도 좋다고 말했고, 실제로 그 앞에서 파트라슈와 함께 죽었던 바로 그 그림이기도 하다.
작품의 형식은 제단에 세우는 삼면화이다. 경첩으로 중앙 그림과 연결된 좌우측면 패널에는 뒷면에도 그림이 그려져 있어, 닫아 놓으면 다른 장면이 보이게 된다. 이 작품의 경우는 크기가 이전 어떤 제단화보다 월등히 컸다. 펼친 폭이 6.4m, (지금은 없어졌지만) 아래 위에 붙는 그림들과 장식을 합하면 높이가 10.7m에 달했다. 또한 그는 보통은 독립된 장면이 그려졌던 세 패널을 연결하여 한 화면처럼 사용했다. 못 박힌 예수의 십자가가 세워지는 모습을 담은 가운데 패널의 왼쪽에는 마리아와 요한, 두려움에 떠는 여자들과 아이들이 있다. 오른쪽에는 끌려오는 두 명의 죄수와 명령을 내리는 로마군 장교가 보인다.
- 작품 감상 POINT
출처 네이버 캐스트 - 테마로 보는 미술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강렬한 명암대조로 강조되고 있는 역동적인 대각선 구도이다. 이는 비대칭적으로 모여 있는 인물 군과 함께, 화면에 강한 운동감을 만들어 내며 감정에 호소하는 효과가 있는 바로크 미술 특유의 요소이다. 중세 이래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던죽은 그리스도의 고통스런 모습과 달리 이 그림의 예수는 아직 살아있다. 그런 예수의 모습과 함께 십자가를 들어 올리는 장면 자체가 중세나 르네상스 그림에는 거의 없던 주제이기도 하다. 이것은 반종교개혁의 정신에서 십자가의 승리를 강조하기 위한 장치이다. 반종교개혁 가톨릭 미술은 고통 받는 구원자를 묘사할 때도 보다 영웅적이고 신과 같은 이미지를 필요로 했다. 마리아조차도 비슷한 장면을 묘사한 이전의 그림들에서 쓰러져 울고 있던 것과 달리 꼿꼿이 서 있는 모습이다. 중앙 패널 좌측 하단의 개나, 좌측 패널의 젖먹이는 어머니, 과도해 보이는 근육을 가진 커다란 인물은 루벤스 특유의 것으로, 그는 어떤 주제를 다루어도 화면에 생기와 낙천주의를 가득 차게 만들었다.
< 레우키포스 딸들의 납치 (1617) >
3. 신화와 관련된 그림
루벤스는 고전 미술과 문학에 대해서도 해박하여 이와 관련된 어떤 복잡한 주제도, 손에 잡힐 듯하고 화면 밖으로 튀어나올 듯 한 생생한 이미지로 만들어 내곤 했다. 이 작품은 아폴로도로스의 신화에 근거한 주제로, 레다와 제우스 사이에서 태어난 형제 카스토르와 폴리데우케스가 레우키포스의 딸 힐라에이라와 포이베를 납치해서 결혼했다는 이야기를 묘사한 것이다. 등장인물은 네 명뿐이지만 화면은 놀란 여성들의 사지 움직임, 울부짖는 말들의 다리와 갈기, 여성들을 말에 싣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근육질 남성의 번쩍이는 갑옷 등으로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다.
이 그림에서 두드러지는 것 하나는 루벤스 특유의 인체 표현이다. 루벤스 예술의 주제가 인간의 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는 성별, 나이, 계급에 따라 각기 다른 피부를 효과적으로 표현할 줄 알았다. 이 작품에서도 구릿빛 남성 피부와 푸른 정맥과 붉은 핏줄이 비쳐 보이는 투명한 여성의 피부는 서로를 두드러지게 하며 대조된다. 그가 그린 인간은 16세기 르네상스 화가들이 그렸던 보편적인 유형의 인간이 아니다. 그가 그린 육체에는 그의 취향과 감수성이 반영되어, 온통 풍만하게 부풀어 있고 건강하고 유쾌한 연극의 한 장면을 만들어 내고 있다.현대인의 시각으로 볼 때 루벤스의 그림에서는 모든 것이 ‘과도’하다. 그가 그린 남자는 근육이 지나치게 발달되어 있고, 여자는 너무 살이 쪘고, 화면은 지나치게 번쩍이고, 춤을 추듯 운동하는 색채는 눈이 피곤할 정도로 화려하다. 그리하여 그의 작품 속 모든 것은 실물보다 크고, 현실보다 강력하다. 역설적으로 이런 점이 절대 왕정과 반종교개혁의 가톨릭교회에 호소력을 가져 전 유럽의 궁정, 교회, 저택이 그의 그림을 원하게 되었다.
< 마리 드 메디치와 앙리 4세의 만남(1622~25) >
캔버스에 유채, 394×295cm, 루브르 박물관, 파리
4.절대왕정의 신격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