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3 .1 운동 연표
1. 3 .1 운동 시작의 출발점
2. 3 .1 운동의 전개
3. 3 .1 운동의 결말
Ⅲ. 민족대표의 역할과 자질 문제
1. 폭력과 비폭력의 문제
2. 민중의 역할과 주도층 문제 (3.1운동의 대중화 문제)
3. 민족대표의 역할에 대한 평가 문제
4. 민족대표의 대표성 부여 문제
Ⅳ. 결말
그러나 이러한 이원론적인 틀을 벗어날 필요가 있다. 흑백논리를 통해 3.1운동에서의 민족대표를 평가하기란 여러 가지 오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1970년대 이후 이원론에 대응하여 제한적 긍정론이 대두하였다. 33인 민족대표들은 대중화 단계에서는 역할이 거의 없지만 3.1운동을 점화하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3.1운동 민족대표의 역할에 대한 논의가 분분한 가운데 지속적인 관심을 받으나 개별적인 이들의 생애에 관해서는 민족대표 가운데 한용운과 손병희를 제외하고는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90년대 들어 이에 대한 논문이 몇 편 나왔다. 김성보는 「3.1운동에서 33인은 민족대표가 아니다」에 이어 「3.1운동에서 33인은 민족대표인가」등의 글을 통해서 그들이 3.1운동 발발의 기폭제 역할을 했음은 인정하면서도 스스로 운동의 지도권을 포기하였다고 주장하였다.
김형석 편저, 『일제하 김병조의 민족운동』, 남강문화재단 출판부, 1993.
민족사바로찾기국민회의, 『독립운동총서』2, 「3.1운동」.
『쟁점과 과제- 민족해방운동사』, 역사비평사, 1990.
F. 볼드원 「윌슨 ,민족자결주의, 3.1운동」-『3.1운동 50주년 기념 논집』, 동아일보사, 1969.
고정휴, 「3.1운동과 미국」-『3.1민족해방운동』, 1989.
강만길, 「남북한 역사인식의 같은 점과 다른 점 」-『창자과 비평』63,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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