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과 우리나라의 아동복지 발달사를 비교해보고, 그로 인한 우리의 과제가 무엇인지 기술해 보시오 서론
세계 모든 국가들의 아동복지 시작점은 아동들이 성인과 다른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고, 다음 산업화 발달로 인하여 아동들의 노동을 착취하는 악덕 자본가들로부터 아동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다.
최근에 이르러 아동들이 행복하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주기 위하여 건강가정, 가족복지의 개념들을 명료화하고, 친가족 정책을 실시하고 있지만, 우리 아동들은 과연 행복한가? 쳇바퀴와 같은 일상을 보내는 아동들에게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일상일 것이다. 이에 대한 반증이 아이들에게 놀이시설 및 놀이방법들을 알려주지 않으면서 유튜브나 게임을 즐기면, 그것을 나쁘다고 비난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자체, 국가, 사회가 나서 아이들이 잘 놀고, 잘 자며, 잘 먹고, 열심히 공부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성취와 놀이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성인들의 행복감 증진 방법이듯, 아이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에 대한 나의 의견을 개진하기 위해, 미국 - 한국 간의 아동복지 발달사를 비교하고, 놀이가 부족한 한국의 아동복지 환경에 대해 지적해보는 시간을 가진다.
본론
미국과 우리나라 아동복지 발달사 비교
미국
현대사회로 접어들면서, 아동에 관한 연구들이 전개되었다. 이 과정에서 아동들은 성인과 달리, 고유한 발달단계를 경험하며, 성장하는 존재임을 인정하였다. 즉, 아동은 성인의 축소판이 아니라 독립적인 인격체를 가진 존재임을 인지하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20세기에는 아동권리사상, 아동권리를 이해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태도들이 형성되었으며, 아동학대 및 아동문제를 관리하는 것은 사후 조치보다 예방적 조치들이 중요하다는 논의들이 발달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논의가 발달하게 된 배경은 미국의 역사적 시작이 영국의 청교도 집단 이주자들의 영향을 무시하기 어렵다. 청교도 및 기독교의 주요 재력가들이 자리를 잡아 만들어 나간 미국은 영국의 사회복지제도에 큰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영국처럼 중앙집권적인 모습이 아니라, 각 주마다 각기 다른 정책들이 운용되었다는데, 아동복지 역시 각 주 단위로 독자적인 발전을 이루는 특이점을 가지게 되었다.
청교도들의 영향을 받은 미국은 처음 시설보호를 위해, 1727년 뉴올리언스 우슬린 수도원에서 인디언 아이들을 보호하는 양육원을 운영하였다. 1740년 경, 영속적인 보호시설인 베더스타 고아원 설립 및 1850년 가정 내에서 학대를 받는 아이들에 대한 보호를 위한 아동보호 모색, 1895년 아동노동법을 제정함으로써 아동들에 대한 노동을 착취하거나 학대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사회적 규범을 제정하였다.
위의 흐름과 같이, 미국은 보호 및 학대, 노동착취를 방지한 이후, 1909년 백악관 회의를 시초로, 1930년 제3차 백악관 회의에서 아동헌장 19개를 채택하였다. 채택된 아동헌장은 1924년 국제연맹의 ‘아동권리에 대한 제네바 선언’이 배경이다. 이 선언의 내용을 중점으로 요보호 아동들을 부조하기 위한 프로그램들을 사회 내에 시스템화 한 이후, 제3차 회의의 내용을 배경으로 1959년 아동의 권리 발표하였다. 모든 아동들이 교육 및 학대로부터 보호를 받고, 빈민이라 하더라도 사회 내로 건강한 참여가 가능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논리 아래, 1960년대 빈민 자녀들을 위한 교육, 영양을 지원하며, 나아가 1971년에는 정신박약아의 권리에 대한 보장 정책을 세웠다.
1964년대, 미국은 1930년대 경제대공황을 겪은 이후 그 다음 세대들이 부모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빈곤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자, 영국의 슈어스타트를 벤치마킹한 헤드스타트 프로그램을 실시, 1974년대에는 가출아동들을 위한 소년법, 비행예방법, 아동학대예방 및 처우법을 제정함으로써 빈곤의 세습을 차단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복지예산이 삭감되고, 복지 증진을 반대하는 세력들에 의해 아동복지법은 선별적 제도 정도로 축소되는 한계를 맞이하였다. 때문에 1996년 이후, 아동복지는 빈곤한 아동들로 제한하며, 빈곤한 가정에서 일어나는 아동학대를 방지하기 위한 가정보호 서비스를 지향하는 것을 노선으로 정했다.
한국
우리나라의 아동복지 발달사를 근대부터 끊어낸다면, 1854년 파리외방선교회 조선영해회가 설립한 고아원 설립을 시작으로, 1905년까지 설립된 다양한 고아원들이 아동보호 및 수용시설 발전을 필두로 볼 수 있을 것이다. 1921년 한일병합이라는 굴욕적인 사건 이후, 1930년대 각 지방마다 보육원이 설립되었다. 이 시기에 독립운동을 하거나 기타 사유로 부모를 잃게 된 아이들은 보육원에서 성장을 하였는데, 보육원의 규모는 1939년 전국 60개 시설에 달했다.
이후, 독립 및 전쟁이라는 혼란스러운 시기를 겪은 이후, 우리나라는 기아, 미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아동복지적 과제가 주어진 상황이었다. 이 시기, 다수의 외원기관들이 국내에서 활동하며, 아동후원사업을 전개하였다. 이 기관들의 민간 복지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전쟁고아 보호, 수용, 입양을 위한 시설들은 1950년대 급속하게 증가하여, 1960년대에는 472개에 달하게 되었다.
1961년에는 아동복리법, 미성년자보호법이 제정되면서 요보호 아동들을 돌보고, 보호하는 일이 국가의 책임임을 법제화하여 공포하였으나, 외원기관들이 철수하면서 아동복지시설의 운영 책임이 국가에게 전가되면서 최소한의 국가개입을 목적으로 하는 잔여적 복지 정책을 실시하게 되었다.
공창수외 5인 (2015). 놀이터 학교 만들기. 김영근 그림. 서울. 지식프레임.
제충만(2016). 놀이터를 지켜라. 서울. 푸른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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