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삼촌의 축의금 봉투 내가 결혼을 한 지도 어언 15년에 가까워간다 내가 결혼을 하던 때는 지금 청년들처럼 모든 것을 갖추고 결혼하는 추세가 아니었다 적당한 때가 되었다고 생각할 때, 내 (1)

 1  외삼촌의 축의금 봉투 내가 결혼을 한 지도 어언 15년에 가까워간다 내가 결혼을 하던 때는 지금 청년들처럼 모든 것을 갖추고 결혼하는 추세가 아니었다 적당한 때가 되었다고 생각할 때, 내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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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외삼촌의 축의금 봉투 내가 결혼을 한 지도 어언 15년에 가까워간다 내가 결혼을 하던 때는 지금 청년들처럼 모든 것을 갖추고 결혼하는 추세가 아니었다 적당한 때가 되었다고 생각할 때, 내 (1)에 대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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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진
외삼촌의 축의금 봉투
내가 결혼을 한 지도 어언 15년에 가까워간다. 내가 결혼을 하던 때는 지금 청년들처럼 모든 것을 갖추고 결혼하는 추세가 아니었다. 적당한 때가 되었다고 생각할 때, 내 옆에 있는 사람과 함께 미래를 꾸려 가는 것이 결혼이었다. 다행히도 나는 성실한 아내를 만났고, 우리는 함께 꾸려갈 미래에 대한 아기자기한 약속들로 결혼식을 준비하였다.
내가 결혼식을 준비하는 과정은 그간 내가 거쳐온 인생을 되돌아보는 일과 같았다. 학창시절 나와 함께 공부를 하고, 싸우기도 많이 싸우고, 함께 어울려 놀던 초중고 동창들을 만났다. 연락이 잘 닿지 않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오히려 연락이 뜸했던 친구들 중 몇은 내가 결혼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와 사전 축하 모임에 참석하였다. 이후 친척들, 직장생활을 하면서 만나고 헤어졌던 상사와 동료, 부하직원들, 동호회에서 만나고 헤어진 사람들 등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을 보면서 내가 어떤 학창시절을 보냈는지, 또 내 인생은 생각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지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는지 깨닫는 시간이었다.
그들 중, 가장 의외의 인물은 외삼촌이다. 어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외삼촌은 내가 독립을 한 이후, 한 번도 연락을 따로 해본 기억이 없다. 어머니의 귀뜸에 따르면, 외삼촌이 한동안 도박에 빠져 모든 자산을 탕진한 상태이므로, 나에게도 돈을 빌리기 위해 연락할 가능성이 있다며 항상 주의를 기울이라고 말씀하셨다. 나도 외삼촌과 친밀했던 기억은 없으므로 외삼촌과 연락을 따로 해야 한다는 동기를 느끼지 못하였고, 친척들을 순회하며 만날 때에도 따로 연락을 드리지 않았다.
그런 외삼촌이 결혼식날에 나타난 건 나에게 굉장히 의외의 사건이자, 당혹스러운 사건이었다. 어머니의 표정은 급하게 굳어졌고, 나는 어머니 옆에 서서 혹시라도 외삼촌이 해코지를 하지 않을까 보디가드와 같은 자세로 꼿꼿하게 서 있었다. 외삼촌은 나에게 다가와, 하얀 봉투 하나를 건네셨다. 축의금이었다. 그리고 외삼촌이 말했다. “내가 이걸 꼭, 너에게 직접 쥐어 주고 싶었다.” 라고. 그리고 외삼촌은 휘휘 돌아, 식장 밖으로 나가셨다. 외삼촌도 스스로가 반기지 않는 손님이라는 것을 잘 알고 계신 이유일 테다.
잠깐의 소란이 있은 후, 결혼식은 예정대로 치러졌고, 신혼여행을 다녀와 축의금을 확인했다. 외삼촌의 축의금 봉투에 눈길이 잘 가지 않아, 가장 마지막에 그 봉투를 열어보았다. 봉투 안에는 빳빳하게 날이 선 만 원 짜리 지폐가 스무 장이 들어 있었고, 멋들어진 한자로 쓴 축사, 그리고 사과의 편지가 담겨 있었다.
편지의 내용은 이렇다. 내가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의게 되었을 때, 외삼촌이 부의금의 일부 금액에 손을 댔고, 그것을 어머니에게 들키게 되어 이후 사이가 굉장히 서먹한 상태로 약 25년을 지내왔다. 당시 외삼촌은 빚에 쫓겨, 정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긴 시간을 보내왔다. 그러던 중, 외삼촌의 아들, 그러니까 외종사촌이 외삼촌처럼 도박에 빠지게 되었을 때 정신이 번쩍 들게 되었다고 한다. 외삼촌이 아무리 울면서 매달려 보아도 외종사촌(형)의 상태는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결국 외삼촌의 신고 아래 도박중독치료센터에 수용되는 결말을 맞이하였다. 그러나 시설 수용 이후, 풀려나면 잠시 일상적인 삶을 살아갈 뿐, 푼돈을 벌어 성공을 할 수 없다며 다시 도박에 손을 댔고, 다시 시설 내에 수용되는 생활이 반복되었다.
외삼촌은 그것을 자신의 업보라고 생각하며, 형제자매들에게 돈을 빌리고 잠적한 일, 그리고 우리 아버지의 장례식장에 나타나 부의금을 털어갈 생각을 했던 일들에 대한 벌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 가슴을 치며 통곡하셨다고 한다. 이제라도 그 후회들을 덜어보고, 나에게는 외종사촌인 아들에게 몹쓸 업보를 물려주고 싶지 않다며, 나와 어머니에게 진심 어린 용서를 구하고 싶다는 말로 편지의 마침표가 찍혀 있었다.
나는 편지를 읽고 한참이나 생각에 잠겼다. 내가 누군가를 용서할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그럴 만한 위치인가? 나에게 비슷한 시련이 오지 않으리라는 법이 있을까. 그리고 이렇게까지 용서를 구하는 아비의 마음을 내친다면, 내가 과연 한 가정의 아버지가 될 자격이 있기는 할까. 편지와 축의금 봉투를 잠시 접어두고, 나는 외삼촌의 축의금, 축사, 편지를 봉투에 다시 담아 잘 읽지는 않지만 잘 보관하고 있는 책 사이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 다음 날 외삼촌의 연락처를 이모에게 물어 전화를 걸었다. 처음 건 신호에서는 연결이 되지 않았지만, 저녁 시간대에 전화를 걸자 외삼촌과 연결될 수 있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던 어색한 숨소리와 침묵을 나는 아직 기억한다. 그때 나는 먼저 입을 열었다. 내가 무엇을 용서해야 할지 잘 모른다. 그것이 잘못된 것인지, 또 어떠한 일인지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그것이 외삼촌을 괴롭히는 기억이라면, 이제는 그것으로부터 벗어나셔도 될 것 같다. 많이 외로우셨겠다. 아버지의 부재로 내가 느낀 외로움만큼, 아들이 있어도 없는 것 같은 그 외로움의 부재는 무엇으로 채우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다. 그만큼 오래 외로워하셨다면, 이미 업보건, 죄값이건 다 치르신 것 같다. 다음에, 좋은 일이 있을 때 다시 찾아뵙고 싶다.
당시 나는 무슨 생각, 어떤 감정으로 외삼촌에게 그런 말을 했는지 기억하지는 못한다. 기억하는 건 외삼촌이 안쓰러웠고, 외삼촌이 느끼는 외로움의 감정이나 상태 등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때 당시의 내가 그랬으니까. 직장생활을 하며,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도 내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나기 어려워 굉장히 외로운 시간을 보냈다. 매일 밤 술이 없으면 잠을 이루지 못하는 심각한 우울증을 겪고 있었다. 그 와중, 축복처럼 다가온 아내가 있어 그 외로운 시간을 이겨낼 수 있었는데, 홀로 아들을 키우던 외삼촌은 형제자매로부터 외면을 받으며, 홀로 이겨내야 했을 그 시간에 공감을 느꼈던 것으로 기억한다.
외삼촌은 고맙다, 라는 외마디와 함께 아주 오랜 침묵을 지키셨다. 목울대에서 올라오는 설움의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렸다.
나는 아직 그 책을 이사할 때마다 항상 가장 먼저 챙긴다. 그 안에 들어 있는 축의금 봉투는 아직 허옇다. 책의 페이지들만 누렇게 바랐을 뿐, 그것을 꾹 누르고 있던 봉투의 외양은 하얗게, 그때 그대로 남아 있다. 나는 그 축의금 봉투를 볼 때면,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을 느낀다. 한편, 내가 누군가에게 진실되게 용서를 구해야 할 순간이 온다면, 그때 나의 위로의 값이 부디 나에게 다가올 위기의 순간을 피할 수 있도록 도와주길 바라는, 일종의 부적과 같은 감정이 들기도 한다.
롤리팝 폰(2G Phone)
아내와 연애를 할 때, 구매한 롤리팝 폰을 아직 버리지 못하고 있다. 집안의 창고에 잘 쌓아 놓은 추억 박스를 종종 꺼내어 볼 때가 있다. 잠이 오지 않거나, 마음이 심란한 일이 있을 때, 그 행위를 하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까닭이다. 혹, 자녀들에게 추억 박스들의 내용들을 보여주면서 “옛날에는 이런 걸로 썼어.” 라고 말해주기도 한다. 예를 들면, 버스 전용 토큰 같은 것. 이제는 더 이상 볼 수 없지만, 우리 때는 당연했던 물품들이 가진 특유한 냄새들은 그때 그 시절을 다시 불러오는 효과가 있다.
아내가 나에게 롤리팝 폰을 사준 계기는 나의 지독한 구두쇠 정신 때문일 것이다. 나의 청년기는 자수성가에 미쳐 있었다. 일반 직장생활만으로는 큰 성공을 거두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 등에 특별한 재주가 없었고, 급여도 남들이 받는 만큼 받는 수준이었다. 따라서 수입은 고정적이니 지출을 통제하고, 저축액을 늘리는 것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자산 증식 방법이었다.
하고 싶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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