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각 생애주기마다 경험한 어려움과 이를 극복하여 적응하는 과정이 어떠했는지에 대해 교재 2, 3장의 생애 주기별 발달 및 적응의 특성과 연결 지어 분석하시오 영유아기 (1)

 1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각 생애주기마다 경험한 어려움과 이를 극복하여 적응하는 과정이 어떠했는지에 대해 교재 2, 3장의 생애 주기별 발달 및 적응의 특성과 연결 지어 분석하시오  영유아기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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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각 생애주기마다 경험한 어려움과 이를 극복하여 적응하는 과정이 어떠했는지에 대해 교재 2, 3장의 생애 주기별 발달 및 적응의 특성과 연결 지어 분석하시오 영유아기 (1)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정신건강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각 생애주기마다 경험한 어려움과 이를 극복하여 적응하는 과정이 어떠했는지에 대해 교재 2, 3장의 생애 주기별 발달 및 적응의 특성과 연결 지어 분석하시오.
영유아기
나의 영유아기 기억은 두 토막으로 이야기 해볼 수 있을 것이다. 바쁜 부모님, 친할머니와 외할머니의 집에서의 시골생활이다.
부모님은 내가 어렸을 때부터 맞벌이로 함께 사업을 운영하셨다. 거창한 사업이 아니었으므로, 집안은 넉넉치 않았고, 위로 있는 오빠는 집안의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공부에 열중했다. 전형적인 남아선호사상이 짙게 깔려 있는 전통적인 가정이라고 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오빠에게만 주어지는 모든 혜택들은 그때 당시에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고, 둘째 차녀인 나는 부모님의 관심에서 살짝 멀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내가 다섯 살이 되던 해, 막내 동생이 태어났다. 이때 부모님은 세 아이를 모두 돌 볼 만한 손이 부족하다고 느끼셨는지, 나에게 “학교 가기 전까지만, 할머니 집에 있지 않겠느냐” 라고 물으셨다. 사실 말이 질문이지, 그것은 명령이었다. 나는 안동(외가)와 강원(친가)를 오고가며, 시골 풍경을 배경으로 영유아기를 지내었던 기억이 있다. 내가 어느 정도 커, 성년이 된 이후로도 부모님과는 약간 거리감을 느끼곤 했다. 아마 오빠, 막냇동생은 부모님과 어렸을 때부터 애착형성을 잘 이루어와 친밀감이 형성되어 있지만, 나는 양가의 할머니들과 애착을 형성하였고, 한 지역에서 안착된 유형이 아니었던 것이므로 부모님과 친하지도 않고, 또 누군가와 진득하게 형성하는 인간관계에 미숙한 면모를 보이는 게 아닌가 싶다.
여하튼 안동과 강원 시골에서 만난 아이들에 대한 기억이라면, 부모님과 함께 산다는 것만 뺀다면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형편이었다. 당시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반드시 보내야 한다는 풍조가 넓게 형성되어 있지 않았고, 또 보육원은 ‘고아원’의 이미지가 굉장히 강했다. 대체로 아이들은 아침에 아침밥을 먹고, 힘이 넘쳐날 때마다 집집의 대문 앞에 서 “현주야! 놀자!” 라고 나를 불러내곤 했다. 나 역시 할머니가 차려주신 밥을 먹고, 눈치껏 걸레를 빨아 방바닥을 쓱쓱 훔치곤 대문 밖으로 쏙 빠져나가 서로 이름도 헷갈리고, 잘 모르는 아이들과 하루 종일 무언가를 하며 놀았다. 여름에는 사람이 몇 빠져 죽었다고 하는 계곡의 근방에서 올챙이들을 잡아 강변으로 패대기를 치며 놀았고, 도룡뇽을 잡았다. 가을에는 작은 깡통에 쥐불을 나누어 받아 추수가 끝난 논밭에서 그것을 돌리며 놀았고, 겨울에는 연을 날리거나, 팽이를 치며 놀았다. 나름 적응이라면, 적응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부모님이 바쁘시니까.’ 라며 스스로 합리화하고, 순응적 원리에 의하여 ‘순종하는 적응’의 유형을 보인 게 아닐까 생각한다. 사실 영유아의 시기라면, 부모님에게 전적으로 의존을 하는 경향을 보이게 되는데, 어디에도 의존할 곳이 없다고 느껴지니 그나마 잘 곳을 제공해주고, 밥을 먹여주는 할머니에게 밉보이지 않기 위해 입을 꾹 다물고 살았던 기억이 있다.
그러던 중 나는 학령기에 이르게 되었고, ‘우리 집’에서 학교를 다녀야 한다는 말에 드디어 부모님과 함께 거주하는 건가, 싶은 기대감에 부풀었다.
아동기
학령기에 들어선 이후, 크게 달라진 사항이 있다면 부모님과 함께 거주하면서 학교를 다녔다는 것이다. 달라지지 않은 점이 있다면 방학기간이 되면 나는 양가 중 한 곳의 할머니 집에 맡겨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오빠는 여전히 공부를 하느라 바빴고, 막내 동생은 아버지께서 끔찍하게 아끼셨던 이유로 나처럼 어디엔가 맡겨지는 일 없이 집에서 곱게 잘 자랐다. 어쩐지 나만 소외된 기분이 들어 ‘외롭다’ 라는 생각이 들었던 기억이 있다.
생각해보면 그때의 ‘외롭다’ 라는 감정은 할머니의 집으로 처음 맡겨졌던 순간, 강원 혹은 안동으로 옮겨가야 했던 순간, 다시 강원 혹은 안동으로 돌아와야 했던 순간, 동네 아이들의 부모님이 “저녁 밥 먹어라.” 라며 하나둘 손을 끌고 가는 장면을 멍하게 보던 순간 가장 크게 느꼈던 기억이 있다.
융의 발달단계에서 이르는 ‘아동기’에서 매우 중요한 관계성인 ‘의존할 만한 존재’가 여전히 부재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 스스로 무언가를 지탱하고 일어설 만한 기반이 없었다. 여전히 순응적으로 부모님의 말을 따르는 반면, 불쑥 불만이 샘솟기도 했다. 왜 내가 이런 불이익을 당해야 하는 걸까? 그런 생각의 끝에는 여동생이 서 있었다. 내가 오히려 막내였더라면 어땠을까, 왜 하필 ‘사이’에 끼인 것처럼 태어나 고생은 다 도맡아서 하는 것일까, 하는 미운 감정은 “원래 이런 건 막내가 당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닿았다. 현실적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고, 현실을 부정하기보다는 애써 즐거운 척 방학이면 짐을 쌌고, 할머니 댁으로 향하는 억제적인 모습을 보였다.
다른 학교 친구들은 방학이면, 학교 친구들끼리 방학숙제를 함께 한다거나, 놀이를 함께 즐겼으므로 방학이 끝난 뒤, 나는 다소 소외되는 감정에 시달려야 했다. 아마 그 때문인 것 같은데, 나는 아동기부터 청소년기까지 많은 친구들과 교류하기보다는 소수의 친구들과 교류하는 것 정도로 교우관계를 지냈다.
청소년기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청소년기에 이르러 나는 확신하게 되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함께 하시는 일이 많이 힘들어졌다고, 은연 중에 말을 흐리시는 걸 들었지만, 오빠에 대한 지원과 예술을 하고 싶다는 여동생에게 지원을 아끼시지 않는 모습에서 ‘대학’을 가는 등 ‘공부’를 통해 나의 진로를 개척하는 일은 아무래도 어려울 수 있겠다는 사실을 말이다.
물론 공부를 아주 두각을 드러낼 만큼 잘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가 학교를 다니던 시기, 명문대학을 진학하면 마을에 플랜카드가 걸리고, 대축제가 열리곤 했다. 명문대학의 법대에 진학한다면 아들, 딸을 가리지 않고, 누구라도 축하를 해주는 그런 분위기가 강했다. 나도 그런 장면을 몇 번 보고 나니, 내가 그 주인공이 되고 싶다는 생각과 상상을 하면서 나 혼자 마음 설렜던 일이 있었다.
참고문헌
참고자료
한국방송통신대학교편집부 저, 정신건강, 한국방송통신대학교, 2014.07.07. pp. 21~33.
작성자 : 김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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