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모택동 시기의 유동인구
3. 개혁-개방기 유동인구의 특징
4.도전과 통제
5. 반복되는 역사 ‘농촌 포위 성시’
1. 유동인구
역사적, 정치적, 누구의 시각인가에 따라 외래인구, 잠주인구, 자발천이인구, 농민공, 초생유격대 등등 20개 이상의 상이한 용어로 표현된다. 보다 나은 삶의 기회를 찾아 농촌에서 도시로의 대규모 노동력의 이동을 말하며 농민도 도시민도 아닌 개혁-개방 이후의 이농민을 지칭하기 위한 개념화의 결과이다. 호적소재지와 실제거주지의 관계, 즉 인호분리 된 사람들을 지칭하지만 인호분리 유동인구의 개념에는 주로 농민공이라 불리는 비농업부문 진출을 위해 이농한 농민집단 이외에도 친척방문, 병원치료, 여행 등의 목적으로 호구지를 떠난 모든 인구집단이 포함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칭하고자 하는 유동인구는 공간적, 직업적, 농민에서 유동인구라는 국가통치 패러다임의 유동이라는 세 가지 존재변화를 포함하는 의미의 유동인구이다.
2. 모택동 시기의 유동인구
명-청 시기에도 지금의 절강성 지역은 절반이 이농인구였기 때문에 유동인구란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또 공산주의 혁명 이전에는 농촌지역과 도시지역은 유기적, 상호 의존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는 사실과 그 연결의 중심에는 농촌인구의 도시지역으로의 자유이동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모택동 시기에 중국의 인구이동은 사회주의 국가체계의 계획에 의해 엄격하게 통제되기 시작하였다. 공산혁명 이후 도시경제가 차츰 회복되었을 때에는 호적제도가 완전히 구비되어 있지 않아서 아직 상대적으로 인구이동이 자유롭고 자발적이며 적법하였고 이들을 ‘천입인구’라 부르며 성시호적을 주기도 하였다. 하지만 1958년에 호적관리의 취지, 호구등기의 범위, 호구신고와 말소, 호구이전절차, 상주인구 및 잠주인구등기 등에 관한 명확한 규정을 포함하고 있는 「중화인민공화국호구등기조례」가 발표되면서 보이지 않는 벽에 의한 도-농 공간분할의 기본적 통치 패러다임이 형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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