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지셔닝
잭 트라우트|알 리스
잭 트라우트와 알 리스가 함께 쓴 포지셔닝 책을 읽고 머릿속에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마케팅 분야에서 손꼽히는 고전으로 유명하다고 들었지만, 그 이유를 직접 체감해보니 과연 많은 이들에게 길잡이 역할을 했을 듯하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특정한 이미지를 어떻게 자리 잡게 만들 수 있는지 그 원리를 쉽게 설명하려는 노력이 느껴졌다. 무엇보다 시장이라는 공간 안에서 정보가 넘쳐날 때, 브랜드가 제대로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한 방법을 고민한 흔적이 곳곳에 보였다.
광고는 더 이상 단편적인 메시지를 외치기만 해서는 소용이 없다. 뭔가 강렬하고 눈에 띄는 구호를 한 번 내보내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왜냐하면 대중이 접하는 정보가 과거보다 훨씬 많아졌기 때문이다. 책에서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자리를 잡으려면, 무작정 모든 메시지를 담아내는 게 아니라 원하는 핵심 가치에 초점을 맞추고, 경쟁사들이 이미 차지하고 있는 부분을 피하거나 혹은 그 자리에 도전하는 방식을 제안한다. 그 방향성이 매우 직관적으로 느껴졌다. 외부 환경을 세밀하게 확인하고, 어떤 분야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내 목소리를 낼 수 있을지 선택하는 것이다.
한편으로 내용 전반에서는 성공 사례 뿐 아니라 실패 사례도 제시한다. 대형 기업이라고 해도, 메시지 전달이 흔들리고 소비자의 인식에 혼선을 주면 결국 시장에서 흔적을 잃고 만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그것은 꼭 대규모 자본을 운영하는 회사만의 문제는 아니다. 아주 작은 신생 업체도 너무 폭넓게 뭔가를 시도하다가 소중한 자원을 낭비하고, 마침내 제대로 정착하지 못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시장 지위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모호한 전략을 피하고, 깔끔한 포지션을 잡는 노력이 필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두 저자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인식의 틀이 이미 견고하다고 말한다. 누구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기존 지식이나 경험과 연결 지으려는 본능이 있다. 그래서 거대한 예산을 들여 뜬금없는 이미지를 전달하기보다는, 이미 굳어진 틀 안에 효과적으로 파고들 수 있는 방식이 더 현실적이라고 주장한다. 이 점은 지금 시대에도 여전히 통용된다고 느껴진다. 아무리 인터넷과 모바일 환경이 발전했다 해도, 소비자가 느끼는 혼란은 크다. 오히려 정보가 급증했으니 더 세심하게 브랜드를 구분하고, 각인시키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두 저자는 시장 점유율 높은 브랜드라도 안심하지 말라고 강조한다. 소비자 인식이라는 것은 쉽게 무너질 수도 있다. 간혹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브랜드가 시대 흐름에 맞추려다 스스로의 정체성을 잃는 경우를 예로 들었다. 너무 급하게 다른 영역으로 확장하거나, 주력 상품의 이미지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할 때 그동안 쌓아온 이미지가 급속도로 퇴색될 수 있다고 했다. 책을 읽으면서 최근 몇 년간 주변에서 보았던 기업들의 행동이 떠올랐다. 어떤 기업은 혁신을 내세우면서 기존 고객에게 받았던 신뢰를 놓쳐버렸다. 또 어떤 기업은 빠르게 변하지 못해 시장에서 잊혀졌다.
저자들은 오래된 기업이건 신생 기업이건, ‘인식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단지 제품력만 좋으면 저절로 팔릴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한다. 현실적으로 많은 시장은 이미 너무 복잡하고, 경쟁자가 우후죽순처럼 나온다. 그런 상황에서 기획자는 소비자가 어떤 특징을 기대하는지, 그리고 어떤 점에서 구별되는지를 먼저 정의해야 한다. 만약 그 정의가 제대로 내려지지 않으면, 아무리 멋진 제품이어도 사람들의 뇌리에 박히기 어렵다.
처음 책을 펼쳤을 때는 오랜 옛날에 나온 마케팅 이론이 지금 상황에도 충분히 유용할까 생각했다. 그렇지만 읽어보니 본질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고 느껴졌다. 포지셔닝을 둘러싼 기본 개념은 시간이 지났어도 여전하다. 마케팅 환경이 디지털 기반으로 재편되었다 해도, 가장 깊은 곳에서 작동하는 원리는 같다. 물론 광고 채널과 소비자 행태가 달라지긴 했다. 그럼에도 저자들은 메시지의 단순화, 목표 고객의 명확화, 경쟁사의 틈새 공략 등 핵심적인 교훈을 강조한다. 어떤 시대에나 적용될 수 있는 원형적 사고라고 볼 수 있다.
너무 교과서적이라고 느끼는 부분도 있었다. 예컨대 몇몇 실제 사례에서 거론된 상황이 요즘 관점에서는 다소 진부해 보일 수도 있다. 그래도 그 속에 담긴 뼈대는 변치 않는다. 사람들이 모든 정보를 세세하게 기억하진 않는다는 전제가 제일 크게 다가왔다. 그러니 브랜드가 전달해야 할 메시지는 필요 이상으로 복잡하면 곤란하다. 간결하게, 그러나 확실히 그 이미지를 머릿속에 꽂아넣어야 한다고 여러 번 반복한다.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