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사마리아인들
장하준
장하준 교수가 쓴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많은 사람이 가지고 있던 국제 무역과 경제 발전에 대한 상식을 뒤흔드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저자는 선진국이 과거에 자신들의 산업을 키우기 위해 보호무역 정책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음에도, 뒷날 발전을 꾀하려는 나라들에게는 자유무역이 유일한 길이라고 강하게 주장하는 모습을 모순적이라고 말한다. 기존의 경제 교과서에서 흔히 보지 못했던 관점이다. 어떤 사람들은 저자의 보호무역 옹호가 실제로 후발 주자들에게 유의미한 이득을 가져다줄지 의심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세계 여러 나라의 역사적 발전 과정을 살펴보면, 국가 주도로 자국 산업을 보호하고 육성하는 시기를 거친 사례가 꽤 많다. 저자는 그 점을 들어, 선진국이 과거에 사용했던 사다리를 걷어차 버리고 지금 막 성장하려는 후발 국가들에게 자유 경쟁을 강제하는 상황이라고 말한다. 보호 장치 없이 무역을 열었을 때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은 누구 책임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특히 자본의 이동이 빠른 현대에, 경쟁력이 낮은 나라가 무조건 문호만 개방했다가는 크게 흔들릴 수 있다는 걱정도 들게 한다.
저자는 개발도상국에게 자유무역만이 최선이라는 논리를 펴는 선진국 정부와 국제기구를 비판하면서, 정작 그들이 과거에 어떻게 스스로의 산업을 성장시켰는지를 솔직하게 드러내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근대 영국이나 19세기 미국이 초기에 무역 장벽과 산업 보조금을 활용하여 자국 기업을 키웠다는 역사적 사실을 알려준다. 요점은 한 나라가 경쟁력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기간 외부 충격으로부터 산업을 지켜내고, 내부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 뒤에 무역을 점차 열어야 자국 기업이 제대로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다고 말한다. 반면 대부분의 주류 경제학은 자유무역이 자원 배분의 효율성을 높인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저자는 선진국들이 실제 역사를 왜곡하거나 일부만 강조함으로써, 신흥국들이 정당한 보호책을 쓰지 못하게 만든다고 본다. 그 과정을 읽는 독자는 기존 경제 논리의 허점을 발견하며 꽤 놀라운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선진국이 말하는 이상적인 시장 원리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의심하게 된다.
책에서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는, 자본주의에 대한 맹목적 신뢰가 과연 모든 나라에 적용 가능한가라는 물음이다. 저자는 문화가 발전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라는 주장을 단호히 부정하기도 한다. 특정 민족이나 사회가 게으르다고 비난받던 때가 있었지만, 제도와 환경이 바뀌자 갑자기 부지런한 국민성으로 변모한 사례를 들어 보여준다. 결국 게으른 기질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국가의 제도와 정책이 개인의 태도를 바꿀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시각을 통해, 어떤 나라는 발전하기에 문화를 비롯한 여건이 안 맞는다는 식의 고정관념에 의문을 제기한다. 내내 읽으면서, 문화가 게으른 사람들을 양산하는지, 아니면 정치·경제적 억압이 사람들을 무기력하게 만드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저자는 제도가 사람들의 태도를 크게 좌우한다고 봐서, 결국 문화적 한계를 탓하기 전에 구조적인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입장에 가깝다.
지적재산권에 대한 논의도 눈길을 끈다. 보통 특허권 등은 혁신과 기술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저자는 너무 강한 지적재산권 보호가 오히려 경쟁을 막고 혁신의 속도를 늦출 수 있다고 말한다. 과거에 혁신이 왕성했던 시기를 돌아보면, 오늘날처럼 강한 특허 제도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특히 의료와 같은 분야에서 지나치게 강한 특허가 빈곤 국가 환자들의 치료 접근을 어렵게 만든다는 주장을 펼친다. 세계화가 무조건 옳다고 주장하는 세력에게, 이런 현실은 불편한 진실일 수도 있다. 그만큼 저자는 세계화가 곧 절대선이라는 등식을 경계한다. 전 세계가 하나의 시장으로 묶인다는 말 뒤에는, 언제든 강대국이 약소국을 수월하게 장악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선진국 문화와 제도를 그대로 모방해야 발전할 수 있다는 믿음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한다. 어디까지 외국 자본을 유치하고, 어느 범위에서는 자국 기업을 지켜내야 하는지 국가마다 답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여러 국가의 구체적인 발전 사례를 제시해 독자에게 생각거리를 던진다. 한국과 대만이 과거에 어떤 산업정책을 이용해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키웠는지, 미국이 자국 철강 산업을 어떻게 보호했는지 등을 분석한다. 중남미 국가나 동남아 국가들의 구조 조정과 재벌 문제도 거론되는데, 곳곳에서 보호무역과 국가 주도 정책의 빛과 그림자가 동시에 등장한다. 누군가는 저자의 통계가 옛날 사례에 치중되어 있다고 비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주요 결론만 보면, 선진국들이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산업을 발전시키면서도, 후발 국가에는 자유무역만 강요하는 지금의 태도가 이중적이라는 메시지를 짚고 있다. 무역 개방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기와 수위를 현명하게 조절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국 산업이 어느 정도 기반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문을 열면, 거대 자본과 글로벌 기업이 단숨에 시장을 지배해버려 중소기업이 살아남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공기업 민영화에 대해서도 저자의 시선은 회의적이다. 민영화가 효율성을 높인다는 주장은 흔히 들어온 이야기다. 하지만 정부가 운영하는 편이 사회적으로 안정망을 구축하기에 더 좋을 수도 있다는 의견도 무시할 수 없다며, 저자는 무조건 민영화가 해법은 아니라고 본다. 특히 전기나 상하수도처럼 필수 공공재가 민영화로 인해 높은 가격으로 공급될 경우, 소외계층은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세계은행이나 IMF와 같은 국제기구가 강권하는 정책들이 실제로 해당 지역 주민들에게 도움이 되는지 냉철히 바라봐야 한다고 말한다. 결국 국가 정책이란 것이 한두 마디로 옳고 그름을 재단하기 어렵다는 시각이 스며 있다.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고립주의만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오히려 상황에 따라 자유무역이 필요한 순간과 산업 보호가 필요한 때를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고 말한다. 국가가 무작정 시장을 열기보다는, 발전 가능성이 있는 산업에 잠시 방패막이를 제공하고, 시간이 지난 뒤 경쟁력이 확보되면 세계 시장으로 나아가는 전략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이다. 부패 가능성이나 비효율은 어떻게 줄일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덧붙인다. 결국 책임감 있는 제도 설계를 통해 국가가 국민 생활을 안정적으로 보호하면서, 동시에 국제 교역에서 얻게 되는 이점을 놓치지 않도록 설계해야 한다고 본다. 그게 바로 선진국이 과거에 실제로 했던 방식이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책에서 언급되는 한 장면은, 서구가 과거에는 아시아인들을 게으른 존재로 바라봤다는 사실이다. 당시에는 동양 문화가 근대 산업화에 맞지 않는다는 편견이 팽배했다. 그런데 일본이 세계적인 산업화에 성공하고, 이어 한국과 대만 등도 눈부신 발전을 이루자, 서양에서 아시아인을 두고 부지런하다는 평가가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문화적 특성이란 것이 결국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저자는 이런 예시를 들어, 민족성이 고정된 운명이 아니라 제도와 정책에 의해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책 전반에는 선진국의 주장이 실제 역사와 모순되는 부분이 많다는 비판이 흐르고 있다.
독자로서 읽다 보면, 우리 사회 역시 과거에 외국 자본 유치나 개방 정책을 무분별하게 추진한 적이 있었다고 돌아보게 된다. 그 결과, 일부 산업에서는 제대로 자생력을 갖추기도 전에 외국 기업의 영향력이 너무 커져버린 측면이 없지 않았다. 반면 자동차나 전자 분야처럼 국가가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보호한 산업들은 어느 정도 기틀을 마련해 글로벌 시장에서도 강한 입지를 확보하게 되었다. 저자가 말하는 국가 개입의 의미는, 뒤처진 나라에 주는 시혜적 조치가 아니라 미래 성장을 위한 준비 기간을 확보해주는 과정에 가깝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각 국가가 역사적 배경과 산업 구조가 다르니, 어떤 식으로 개입해야 할지 정답은 없지만, 적어도 일괄적으로 자유무역을 강요해서는 곤란하다는 생각이 더욱 선명해진다.
책에서 흥미로운 또 다른 부분은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의 관계다. 흔히 자유 민주주의 체제가 더 효율적이라는 가정이 있지만, 저자는 권위주의 체제에서도 일정 단계까지는 경제 발전을 이뤄낸 전례가 있었다고 지적한다. 그렇다고 비민주적 정권을 옹호하거나 그 폐해를 무시한다는 뜻은 아니겠지만, 의사결정 구조가 형식적 민주주의인지보다 실제로 정책이 어떻게 작동하고 누구를 이롭게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다양한 문화적 요소가 뒤섞여 있을 때, 그 복잡성은 더 커진다. 다 읽고 나면, 교과서에서 흔히 봐온 이론적 프레임이 얼마나 제한적인지 깨닫게 되는 면이 있다.
책 제목인 “나쁜 사마리아인들”이라는 용어는 처음에 꽤 자극적으로 느껴진다. 전통적으로 ‘좋은 사마리아인’은 어려운 이를 돕는 선행의 상징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선진국이 자신들을 선량한 이웃이라고 포장하면서 실제로는 후발국이 성장하는 데 결정적인 장애를 설정해놓았다는 사실을 부각한다. 저자는 그 상황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가난한 국가에 대한 원조나 투자가 말로는 호의처럼 보이지만, 때로는 선진국 기업의 이윤 극대화를 위한 발판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그런 대목을 접하면, 국제 사회에서 자주 언급되는 ‘원조’가 언제나 순수한 호의일까 하는 의문에 사로잡힌다.
저자는 지적재산권이 발전의 핵심이라는 통념에도 이의를 제기한다. 세계 주요 기업들이 특허권을 강화함으로써 경쟁자를 막고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전략을 흔히 사용한다. 그러나 지나치게 독점적이면 혁신의 동력이 오히려 약해질 수 있고, 빈곤 국가의 환자들이 꼭 필요한 약조차 구하지 못하게 되는 문제도 발생한다. 결국 지적재산권이 어느 선까지 보호되어야 하는가, 그것이 정말 혁신을 촉진하는지, 아니면 강대국 기업에게만 이로운 제도인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책은 말한다.
또 저자는 외국인 직접투자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진다. 보통 외국 기업이 들어오면 일자리와 기술 이전이 이뤄진다고들 한다. 그런데 실상은 핵심 기술을 공유하지 않고 단순 생산만 맡기는 경우가 많아서, 현지 노동자는 낮은 임금에 묶이고 이윤은 본사로 빠져나간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무턱대고 법인세를 깎아주는 식의 유치 정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