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홍세화
홍세화가 쓴 책을 읽어보면, 처음에는 낯선 곳에서 경험한 삶에 대한 묘사가 눈에 들어온다. 작가는 남민전 사건 이후 한국을 떠나야 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여러 매체에서도 소개된 적이 있으나, 어두운 시대 속에서 자신이 품었던 신념을 지키는 과정이 매끄럽지 않았던 탓으로 보인다. 귀국할 수 없는 상황이 이어져서 결국 빠리라는 도시에 머물게 되었고, 그곳에서 택시를 모는 일상을 택했다고 한다. 출발점은 꽤나 갑작스럽게 느껴진다. 조국을 떠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겪을 법한 불안과 초조함이 전해진다. 어떤 하루는 택시가 막히는 길 위에서 더딘 속도로 이동하는 동안 자신을 둘러싼 세계가 너무 낯설게만 느껴졌을 것이다.
작가가 말하는 빠리의 모습에는 투덜거림과 애정이 동시에 배어 있다. 택시를 타는 승객들과 나눈 짧은 대화 속에서 한국과는 다른 분위기를 감지하기도 하고, 때로는 편견을 마주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가 한국인이자 망명을 한 사람이며, 또 낯선 땅에서 생계를 이어가는 노동자로서 느꼈을 여러 감정이 담담히 녹아든다. 어떤 날은 손님이 거칠게 말해도 그저 가만히 듣고 넘기는 식으로 반응할 수밖에 없었을 테고, 또 다른 날은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이들도 있긴 했을 것이다. 책에 묘사된 여러 장면은 택시 기사로서 겪는 크고 작은 사건의 연속이지만, 머릿속에서는 더 큰 고민이 이어졌을 것 같다.
그가 몸담았던 시대적 배경도 무시하기 어렵다. 한국에서는 민주화 운동이 활발히 일어났지만, 동시에 엄격한 분위기가 존재했던 시절이다. 그런 시간을 피해 빠리로 가야만 했던 사연은 무겁게 느껴진다. 작가가 원한 것은 단지 타국에서 편히 사는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 글의 곳곳에서 발견된다. 언젠가 돌아갈 날을 꿈꾸면서도, 그곳에서 살아야 하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심정이 더욱 강조된다. 빠리의 골목길을 헤매며 택시를 운전하다가 멈춰선 자리에서, 그가 생각했던 조국의 모습이 계속 마음을 찔렀을 것 같다.
세월이 흐른 뒤, 결국 한국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귀국한 뒤에도 예전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현장과 비판적인 목소리를 멈추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그런 태도는 그가 이 책에서 자주 언급하는 단어인 ‘똘레랑스’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느껴진다. 남의 관점이나 방식을 존중하려 하는 태도를 의미한다고 작가는 말한다. 한국에 돌아와서 직접 목도한 현실도 그를 자유롭게 만들지는 않았던 듯하다. 예전과 비교했을 때 한층 나아진 듯하면서도, 여전히 관용이나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현상을 목격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똘레랑스라는 화두를 한국 사회에 다시 던졌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의 개정판에는 빠리에서 촬영한 사진들이 컬러로 실렸다고 한다. 오래전 흑백 이미지가 아니라 좀 더 선명한 색감으로 빠리 골목이나 도심 풍경을 담아낸 것이다. 그 도시가 가진 풍광은 낭만적인 면이 없지 않지만, 작가가 이야기하는 택시 노동자의 시선은 그저 화려함만을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이방인으로서 그곳을 누비며 목격하는 가난, 차별, 이주민의 문제, 그러한 결들을 더 직접적으로 느끼게 해준다. 책을 읽다가 사진을 보게 되면, 서로 다른 면이 대비되는 느낌이 든다. 예쁘게 보이는 거리 이면에 존재하는 사회적 문제도 함께 머릿속에 떠오른다.
망명자 신분으로 살았던 그의 과거는 자칫 읽는 사람을 무겁게 만들 수 있다. 그렇지만 그 속에는 인간에 대한 긍정이 깔려 있다고 생각된다. 빠리에서 택시를 몰았을 때 가끔 만났던 따뜻한 손님들, 언젠가 함께 와인을 마시며 농담을 주고받았던 이웃들, 그리고 언어가 서툴러도 관심을 기울여줬던 주변인의 호의가 전해진다. 그가 말하는 똘레랑스는 특별한 철학적 단어로만 보이진 않는다. 일상 속에서 서로 차이를 인정해주고, 누구든 평등하게 대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에 가깝다. 한국에 돌아온 이후에도 한결같이 그 가치를 되뇌는 이유는 아마도 누구나 존엄하게 살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믿기 때문 아닐까.
그 책을 읽다 보면, 옛날 한국 사회에서 왜 그가 자유롭게 목소리를 낼 수 없었는지 떠올리게 된다. 항의와 비판이 허용되지 않는 구조 속에서는 많은 사람이 뜻을 숨길 수밖에 없었다. 저자가 본 것처럼, 파리에서는 자신이 정치적 망명자임을 굳이 감추지 않아도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았다. 물론 생계를 위해 택시를 모는 것이 쉬웠다는 뜻은 아니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곳에서 날마다 정신없이 일해야 했을 것이고, 이질감 속에서 고독함도 컸을 것이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가 어느 정도 보장된 환경에서 스스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고 보인다.
똘레랑스가 그에게 얼마나 큰 의미였는지 대화 속에서 느껴진다. 그는 자기 자신이 소외된 경험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문화를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한국에서 마주친 극단적인 경쟁과 배타적인 분위기가 마음에 걸렸다고 글에서 설명한다. 모두가 동일한 배경이나 조건에서 살아가는 게 아닌데, 다름을 이유로 억압하거나 차별하는 상황을 자주 보았다고 한다. 그래서 똘레랑스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주장을 멈추지 않는다. 돌아와서 보니 달라진 것 같다가도, 곳곳에 여전히 남아 있는 배제와 편협함을 본 것이다.
책의 문장들은 지나치게 미화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고생을 낭만적으로 그릴 의도가 없어 보인다. 택시 운전을 하면서 얻게 된 깨달음이 대단히 특별한 진리가 아니라, 몸으로 부딪치며 느낀 현장의 목소리라는 점이 전달된다. 어떤 날에는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좋지 않은 말을 들어야 했고, 다른 날에는 한국에서 떠밀려온 뒤늦은 회한에 잠겨야 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반복되는 사건 속에서 현실을 직시하게 된다. 도로 위에서 마주치는 모든 풍경이 밋밋한 색감으로만 남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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