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사] 페르시아전쟁의 원인, 경과, 그 후 폴리스체제
2.전쟁의 원인
3.전쟁의 경과
4.전쟁 이후
많은 폴리스들은 BC 6세기경 대내적으로 정치ㆍ경제ㆍ사회에 걸쳐 체계를 정비하고 문화적 성취 기반을 확립했다. 당시 고대 동방의 최후 통일세력인 페르시아가 대외적으로 팽창하게 되자 국제적 긴장이 고조되었다. 페르시아 왕국은 키로스(560-530)가 메디아 왕국을 무너뜨리고 왕위에 등극하면서 시작되었다. 오늘날의 북부 이란에 위치해 있던 메디아 왕국의 판도는 중부 아나톨리아의 리디아 경계에까지 뻗쳐 있었다. 키로스는 기원전 546년에 리디아를 정복함으로써, 리디아의 왕 크로이소스가 일찍이 아나톨리아 서부지역을 복속시키면서 지배했던 그리스 도시국가들도 지배하게 되었다. 당초 페르시아 왕국은 메소포타미아 동쪽인 이란 남부에 그 근거지를 두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다리우스 1세(522-486)의 치세에 이르러서는 동서로는 현대의 아프가니스탄과 터키, 남북으로는 구소련의 남단 경계와 이집트 및 대서양에 이르는 대제국을 다스리게 되었다. 또한 페르시아는 페니키아의 통상활동을 보호함으로써 소아시아 지방의 그리스 식민시에 큰 타격을 주었다. 이러한 페르시아의 세력 확장은 기원전 5세기 초에 발생한 페르시아와 그리스 도시국가 연합 사이에 발생한 커다란 갈등의 무대를 제공했다.
한편 서쪽에 있는 그리스가 세력을 확장했다는 사실이 더욱 긴장 고조의 요인이 되었다.
2.전쟁의 원인
다리우스 1세는 기원전 513년 스키타이와 결전을 치른 끝에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길목을 차지했다. 아울러 흑해 연안의 그리스 식민 도시와 이오니아 지역의 도시국가들 사이의 교역권도 그의 손아귀에 떨어졌다. 이오니아 도시국가들은 경제의 목줄을 남의 손에 맡긴 셈이 된 것이었다. 그리고 낯선 페르시아의 정치 체제가 압박해 왔다. 페르시아는 도시와 인접한 피정복 지역 사이의 주종 관계를 분명히 하고, 피정복 지역에 총독을 파견하여 통치했다.
차하순, 『서양사 총론1』, 탐구당, 2000.
토머스 R.마틴/이종인 옮김, 『고대 그리스의 역사』, 가람기획,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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