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사] 공화정의 몰락에서 제국시대까지
-제1차 삼두정치
-제2차 삼두정치
-제정의 시작, 아우구스투스 황제(BC27년~AD14년)
-1세기, 세습된 황제권
-오현제시대
그라쿠스의 개혁이후 원로원 귀족들의 권위는 무너졌고 정파 간의 경쟁과 이익추구에 몰두한 나머지 공화정의 구조적인 문제들에 대처하지 못했다. 그 뒤 집정관이 된 군사령관 마리우스와 술라의 독재정치와 내란이라는 혼란의 시기를 겪고 이어진 삼두정치와 카이사르의 독재는 결국 공화정을 몰락시키고 로마제정을 탄생시킨다. 초기 로마제정은 공화정의 모습을 완전히 잃지 않은 원수정을 취하나 곧 독재가 이어지고 오현제시대에서 다시 안정된 모습을 보인다. 이 시대에는 로마 제국의 정치가 안정되었으며, 경제도 번영하고 영토 또한 최대의 판도에 이르렀고, 그 문화는 속주 각지에 파급되어 제국의 최성기를 이루었다. 하지만 콤모두스를 시작으로 후기 로마제정은 몰락으로 치닫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을 살펴보아 로마공화정의 몰락과 제정의 성립이 어떠한 과정으로 이루어졌는지 알아보자.
-제1차 삼두정치
술라의 후원을 받으면서 처음부터 별다른 어려움 없이 관료세계에 입문한 크라수스와 폼페이우스는 이후 독재관 술라가 은퇴한 후에도 원로원의 요청에 따라 히스파니아와 이탈리아에서 발생한 반란을 진압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BC72년, 로마로 귀환하는 폼페이우스와 크라수스는 원로원의 명령에 불복하고 군대를 도시 주변에 배치하면서 서로 연합하게 되고 민중의 지지를 바탕으로 집정관으로 선출되었다. 이 시기에 카이사르 역시 군사적인 업적을 쌓고 정치에 입문했다. 카이사르는 BC60년에 원로원의 감시를 받던 폼페이우스와 부호 크라수스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여 제 1차 삼두정치를 실시한다. 폼페이우스와 크라수스는 카이사르를 집정관에 당선시키기 위해서 막강한 영향력과 재력을 동원하였다. 카이사르는 권력을 장악한 후, 폼페이우스의 군인들에게는 약속한 토지를 그리고 크라수스에게는 토지분배에 필수적인 토지전매권을 제공하였다. 또한 그라쿠스 형제들의 개혁안과 그 내용이 상당히 일치하는 경제-사회적 계획들을 수행했고 폼페이우스를 딸 율리아와 결혼시켜 자신의 사위로 만들었으며 기원전58년에는 자신의 후임 집정관들에 가비니우스와 피소를 선출하도록 하였다.
장 마이 앙겔, 김치규 옮김, 『로마 제국사』, 한길사, 199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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