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김유신&사량과 모량의 대결
2. 신라 초의 사량과 모량
3. 사량리와 김유신의 관계
4. 사량리&김유신 VS 모량리
5. 결론
사량과 모량은 진한 대의 여섯 부족에서 시작해서 신라 중대까지 세력을 미친 부족이다. 시대를 달리하며 각각 황후를 배출하였고, 사량은 진평왕 대의 화랑 세력으로써 김유신 세력과 결탁하여 신라중기 때 세력을 잡은 모량과 대결한다. 삼국유사를 통해 이들의 이해관계와 흥망에 대해 알아보고 사량과 모량, 김유신에 대해 재조명해보고자 한다.
2. 신라 초의 사량과 모량
편을 보면 사량리 알영정가에서 혁거세왕의 비인 ‘알영부인’이 나왔다고 한다 삼국유사, 김원중옮김, 을유문화사, 2005, P.66
. 이는 사량리가 초기 왕후를 배출할 정도로 세력이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또한 삼국사기 신라본기 제 1의 시조 혁거세거서간편에서나 삼국유사 편에서 부족이 소개되는 순서를 보아도 혁거세왕이 나온 양산촌 다음으로 사량부가 소개되고 그 다음으로 모량부가 소개되는 것으로 보아 초기 사량과 모량 부족의 세력이 강했음을 알 수 있다.
삼국유사에 빠져있는 탈해왕 이후부터 미추왕 때까지 왕위 계승을 삼국사기에서 살펴보면 혁거세왕의 후손들과 탈해왕의 후손, 김알지의 후손들이 왕족간의 혼인관계를 맺으며, 왕위를 계승해나가고 있다. 이는 초기 황후세력인 사량리의 세력이 독점적이지는 않지만 모량리가 지철로왕 때 황후세력으로 떠오르기 전까지 그 세력을 이어오고 있었음을 추측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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