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 단정노선
1. 미소공동위원회의 최종적 결렬
2. 한국문제의 유엔 이관
3.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의 입국과 남한단선 결정
III. 남북협상운동
1. 남북정치회담 제의
2. 남북대표자 연석회의 초청
3. 남북정당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
4. 남북요인회담
5. 귀환과 단정수립
IV. 결론
이 글에서는 해방 직후 한국민족주의 운동의 마지막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는 남북협상운동과 그 이유가 된 단정노선에 관해 알아보고 그 의의를 알아보고자 한다.
II. 단정노선
1. 미소공동위원회의 최종적 결렬
전후의 한반도 문제에 대해 미소가 합의한 바는 두 가지였다. 그 첫째는 에 담겨있는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한 분할점령’ 방침이다. 미소는 이에 따라 38도선을 경계로 한반도의 남북을 배타적으로 점령하였을 뿐 아니라 점령지역 내에서 배타적 통치권을 행사하면서 자신의 영향력을 강화시켜 나갔다. 그 결과 1945년 말에 이르면 남북에는 이미 상이한 두 체제가 그 기초를 내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반도 문제의 궁극적 해결방안, 즉 단일의 독립된 자치정부를 수립하는 방안으로 미소가 합의한 것이 1945년 12월의 모스크바협정이었다. 그 내용은 ‘선 임시정부 수립, 후 신탁통치’를 거쳐 한국을 단일의 국민국가로 독립시킨다는 것이었다. 모스크바협정에 따라 임시정부 수립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제1,2차 미소공동위원회가 1946년 3월과 1947년 5월 각각 개최되었지만 ‘협의대상 선정문제’ 표면상으로는 임시정부 수립방안을 미소공동위원회와 같이 협의할 한국의 정당 및 사회단체 대표를 선정하는 문제였지만 그 본질은 장차 수립될 임시정부의 주도권을 둘러싼 것이었다. 미국은 친미 우파주도 하의 임시정부를 수립하고자 했고 소련은 친소 좌파세력이 주도하는 임시정부를 주도하였기에 양측의 합의는 처음부터 쉬운 것이 아니었다.
를 둘러싼 미소의 이견으로 인해 결국 결렬되었다. 합의를 더욱 어렵게 한 것은 우파측의 격렬한 반탁운동이었다. 반탁을 근거로 소련은 협의대상에서 우파세력을 배제할 것을 요구했고 미국은 자신의 지지세력을 배제하려는 요구를 수용할 수 없었다.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