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본론
1) 고도성장의 발자취
2) 경제면에서의 개혁
3) 10년간의 개혁성취
4) 고도성장의 후유증
3. 결론
이후 개혁·개방노선은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지역적인 확대뿐만 아니라, 경제 각 영역에의 적용, 이론적인 정비를 거치면서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의 전환을 추구해왔다. 이는 그 때까지 중국을 잠재워온 자들로서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유연하면서도 대담한 전환이었다.
중국의 현실주의적 경제운영의 핵심은 방권양리(放權讓利) 국가의 권한을 하부로 이양해 이익을 하부에 전달하는 과정.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이것은 등소평의 심복인 조자양과 만리가 당위원회 제1서기로 있었던 사천성(四川省), 안휘성(安徽省)에서 최초로 실시되었다. 농업부문에서는 개별농가에 생산을 위탁하는 가정생산총부제가 실시되었고, 공업부분에서는 기업의 내부유보 확대, 계획 외 생산·판매의 허가 등 기업의 자주권을 학대하는 여러 가지 조치가 취해졌다.
1979년에 시작된 개혁으로 인민들의 증산의욕이 불붙기 시작했고 노동생산성과 농업소득이 크게 증가했다. 1984년에는 사상 처음으로 식량생산이 4억t을 돌파했다. 노동생산성의 향상으로 발생한 잉여노동력과 소득수준의 향상으로 생겨난 농촌 잉여자금이 그 탈출구를 찾아 집중된 곳이 향진기업(響鎭企業)이다. 향진기업은 본래 농업과 관련된 공업부문을 중심으로 발생하였고 혈연적, 지리적, 경제적으로도 농촌지역과 밀접한 연계를 지닌 경제조직이었다. 그러나 사영기업 부문의 활성화와 경영범위의 확대, 도시기업과의 합병·합작을 통한 지역장벽의 해소와 영세구조의 탈피 등에 힘입어 현재는 소성진(小城鎭) 및 대도시 일부의 사영기업까지도 포괄하는 광범위한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향진기업의 경영범위도 농. 임. 축. 어업제품 가공업, 수공업, 광업, 제조업 등 공업부문 이외에도 건축업, 교통운수업, 상업, 서비스업 등 모든 업종으로 확대되었다. 농촌개혁의 성공에 이어 1984년 10월 개최된 제12기중앙위원회 제3회 총회에서는 경제개혁의 중점을 도시로 옮기는 「경제체제 개혁에 관한 결정」이 채택되면서, 개혁·개방 노선이 일부 지역·일부 영역에서의 시행에서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⑴ 개혁전반의 청사진을 준비하고, 개혁의 속도를 가속화함과 아울러 도시를 중심으로 한 경제체제 개혁을 실시한다.
⑵ 사회주의의 근본 임무는 사회생산력을 증진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생산력의 발전을 저해 하는 경제체제는 과감히 개혁한다.
⑶ 전국 재정수입의 80%를 차지하는 도시부의 국영기업 활성화를 위해 계획체제, 가격체 계, 국가기구의 경제관리기능, 노동·임금제도 등을 포함한 각 방면의 개혁을 추진한다.
⑷ 행정기구와 기업간의 직무를 분리시킨다.
⑸ 개인경제를 포함한 각 경제형태를 활성화시키고, 대외적인 경제기술 교류를 확대시킨다.
세제개혁 정비·재정제도·금융체계도 개혁한다.
이러한 「결정」에 따라 중국 경제는 종래의 통제적 계획경제에서 탈피해 개혁이 농촌에서 도시로 지역적으로 확대되었을 뿐만 아니라, 경제의 각 영역에까지 파고들어 중국 경제의 발전에 커다란 기여를 했다. 하지만 당시의 개혁들은 그 운영과정에서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게 되었다. 경부정부기과열, 패 권력을 이용해 공정가격으로 상품을 구매해 시장가격으로 판매.,
林木西 외, 『중국현대경제사』, 매일경제신문사, 1993.
유세희, 『오늘의 중국대륙』, 한길사, 1984.
유희문 외 공저, 『현대중국경제』,교보문고, 2000.
중국공산당 중앙문헌연구실, 『정통 중국현대사』, 사계절, 1990.
박정동, 『21세 중국』,한국경제신문사, 1996,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