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그리스 음악
Ⅲ. 그리스 미술
Ⅳ. 그리스 철학
Ⅴ. 그리스 과학
63년에는 영국정부의 지명에 의하여 덴마크왕자인 게오르기오스 1세(재위 1863~1913)가 새로운 국왕으로 맞아들여졌는데 이는 영국이 이오니아제도(1815년부터 영국령)를 그리스에 할양(割讓)한다는 조건으로 승낙한 것이었다. 독립 당시 그리스의 영역은 아르타만(灣)과 볼로스만(灣)을 잇는 선 이남의 본토와 키클라데스제도로 한정되어서 다른 그리스인 거주구역의 병합문제는 당초부터 정부의 현안(懸案)이었다.
국토의 확장은 국민에게 있어서 유일하게 일치된 민족적인 요구사항이었으며, 19세기 후반부터 옛 비잔틴제국의 영토를 목표로 하는 대그리스주의운동이 전개되었다. 러시아-투르크전쟁(1877~78)에서 중립을 유지한 결과, 78년 베를린회의에서 테살리아와 이피로스 일부에 대한 병합을 인정받았다.
90년에는 66년 이래 본토와의 병합을 요구하며 반란이 일어나고 있는 크레타섬에 군사적으로 개입하여 오스만투르크와 전쟁을 시작하였다. 패배로 끝났지만 그 결과 크레타섬은 열강의 관리밑에서 독립하였고 1913년 그리스령이 되었다.
1909년에는 1908년 청년터키혁명이 원인이 되어 결성된 청년사관들의 <군인동맹>에 의해 쿠데타가 일어났으며 크레타섬 출신의 E. 베니제로스가 총리가 되었다. 베니제로스는 그리스의 근대화와 <대그리스주의>의 실현을 위해 힘써 2차례의 발칸전쟁(1912~13)을 통하여 이피로스의 대부분과 마케도니아의 남쪽 반과 트라키아의 서부를 차지하여 영토를 거의 배로 확장시켰다.
13년 게오르기오스 1세가 테살로니카에서 암살되어 그의 아들 콘스탄티노스(재위 1913~17, 1922)가 왕위를 계승하였으나, 혈연상 친독파(親獨派)인 그는 제 1 차세계대전 때 중립을 원하여 삼국협상을 지지하는 친영파(親英派)인 베니제로스와 대립하였다. 결국 영국과 프랑스의 압력으로 왕은 양위(讓位)를 하게 되었고, 17년에 그리스는 마침내 독일에 대해 선전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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