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중국, 일본 간의 문화적, 경제적 교류가 점차 활발해질수록, 이 국가들 사이의 정치적, 군사적 긴장도 점차 강해지고 있습니다. 교재 11장과 여러 자료를 참고하여 이러한 상황을 묘사하고 이 지역에서 전쟁의 가능성을 낮추고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논하시오.
세계의정치와경제
한국, 중국, 일본 간의 문화적, 경제적 교류가 점차 활발해질수록, 이 국가들 사이의 정치적, 군사적 긴장도 점차 강해지고 있습니다. 교재 11장과 여러 자료를 참고하여 이러한 상황을 묘사하고 이 지역에서 전쟁의 가능성을 낮추고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논하시오.
목차
Ⅰ.서론
Ⅱ. 본론
Ⅲ. 결론
Ⅳ. 출처 및 참고문헌
Ⅰ. 서론
한국과 중국, 일본은 고대 시절부터 지금까지 아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이다. 조선은 청나라의 간섭을 받는 나라였으며, 1900년대에 들어서는 일제강점기의 시대가 되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였다. 일본과 중국의 중간에 끼어있는 한반도는 끊임없이 열강의 침략을 받아왔다. 이전부터 한반도를 자기들의 땅으로 귀속시키려는 움직임이 활발하여 우리나라는 중국과 일본을 우호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의 가능성은 작아지고 문화적, 경제적 교류가 활발해짐에 따라 여러 가지로 분쟁이 일어나고 있다.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이후 일본은 조선에 대해 청나라보다 우월권을 가지며 랴오둥반도를 차지하게 된다. 하지만 1895년 5월에 일본의 독주를 탐탁지 않게 여긴 러시아, 프랑스, 독일의 열강들이 ‘삼국간섭’을 통하여 일본은 랴오둥반도를 다시 청나라에 반환하게 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를 본 조선은 러시아의 영향력이 크다는 것을 깨닫고 조선은 러시아에 접근하게 된다. 친러 세력이 강세를 보이자 친일 세력은 1895년 10월 8일에 일본에 의해 육성된 훈련대와 일본인 낭인들을 경복궁에 침투시켜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사건을 일으킨다(을미사변). 친일 세력들은 단발령까지 내리게 되었고, 왕비 시해와 단발령의 시행으로 전국적으로 의병 봉기가 일어나게 되었다. 의병이 일어나자 이를 진압하기 위해 중앙의 병력까지 동원하게 되어 수도 경비에 빈틈이 보이자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겨가는 아관파천이 일어났다. 러시아 공사관에서 다시 돌아온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하였고, 이는 오랜 기간 전통적으로 지속되온 중국 중심의 사대 조공 질서를 끝내겠다는 선포이다.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자주적인 국가로 거듭나기 위해 광무개혁도 실시했지만, 주변국들은 이를 가만히 두고 보지는 않았다. 러시아와 일본이 한반도를 두고 세력 다툼을 벌였고 결국 러일전쟁을 일으키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고종은 국외 중립을 선포하였지만 일본의 강제 침략으로 의미가 없어졌다. 러일전쟁이지만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제로 군사 전략지로 사용하였기 때문에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한반도에 사는 우리 민족이 지게 되었다. 일본의 본격적인 한반도 식민지 정책이 시작된 것이다.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일제는 1905년 11월에 을사조약을 체결하여 조선을 일본의 식민지로 삼았다. 이때부터 1945년 광복때까지 일제의 식민지로 우리나라는 많은 아픔을 겪었고, 지금까지도 그 아픔은 이어져 오고 있으나 일본은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다. 문화적, 경제적으로 교류는 활발히 하고 있으나 민족감정에서는 전혀 치유되지 않은 것이다. 중국 또한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와 사대관계를 가지고 있었고, 최근에는 동북공정으로 중국과의 감정도 좋지 않은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문화를 중국 문화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세계유네스코에 등재도 하려는 움직임이 있었기에 더욱더 우리나라와 사이가 안좋을 수밖에 없다. 또한 중국은 현재 북한과 친밀한 관계이기 때문에 교류는 하되 더욱 조심스러운 관계를 가져야 함은 틀림없다. 625전쟁에서도 중공군의 투입으로 한반도가 둘로 나눠지는 계기가 되었으니 좋은 감정은 별로 없다고 봐야 한다. 본론에서는 한국과 중국, 일본 사이의 문화적, 경제적 교류가 활발해짐에 따라 정치적, 군사적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을 낮추고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알아보겠다.
Ⅱ. 본론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을 알아보기 이전에 한국과 중국과의 관계, 한국과 일본과의 관계, 중국과 일본과의 관계를 먼저 살펴보겠다.
한국과 중국과의 관계
한국과 중국은 아주 오래전부터 깊은 인연이 있는 나라이다. 고구려 시대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견제하기 위해 맺은 나당관계를 시작으로 중국 영토의 고대 나라부터 대립이 시작되었다. 당시 중국은 한반도의 고대 국가인 고구려, 백제, 신라와 대립하는 십자외교와 같은 사건들이 빈번했다. 신라는 당나라와 손잡고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키는 데에 성공하였다. 하지만 신라는 바로 나당전쟁을 일으켜 한반도에서 당나라를 쫓아내었다. 신라와 당나라는 이후 최소로 필요한 정도로만 교류하면서 반세기 가량 서로 견제하면서 대치했다. 733년 성덕왕때에 이르러서야 당나라가 신라를 인정하면서 화친하여 당의 문화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 시기 발해는 요동에서 당나라를 완전히 물리치고 고구려와 당의 혼합된 문화를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733년부터 몽골이 침략하기 전인 1392년까지 한중관계는 중국식 조공제도가 바탕이 되어 서로 활발히 교류하였지만 각각의 독자성은 유지하였다. 신라, 발해, 고려의 귀족들은 중국으로의 유학을 장려하는 등 교양을 쌓았고, 승려들은 당나라, 북송, 중국을 경유하여 서역까지 유학을 가기도 하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한반도의 나라들은 독자성을 가진 나라였다. 몽골의 침략을 받아 강화도 천도를 한 후 중국과는 적대관계를 맺었다. 약 40년 간 적대관계였으며, 이후 화친하면서 몽골과 원나라의 부마국이 되었다. 이때부터 중국과의 사대관계가 시작된다. 원나라가 망하고 명나라가 세워진 후에 고려에는 친원파와 친명파가 나뉘어져 대립관계가 형성되었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세워지면서 명나라와는 우호적인 관계가 된다. 조선은 명에 매년 사신을 파견하고 공물을 바치는 등 상국 및 우호국으로 지극한 유대관계를 맺는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은 명에게 지원군 파병을 요청하여 일본을 물리칠 수 있는 역할도 해주었다. 명의 국력이 약해지고 청나라가 세워지면서 사대관계는 이어졌지만 명나라 때와는 달리 중국에 대한 반감이 깊었다. 조선은 청나라가 상국을 멸망하게 한 자들이라며 멸시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으나 청의 병자호란으로 청과 사대관계를 맺게 된다. 하지만 청일전쟁에서 청나라가 패배한 후 조선과 청은 점차 멀어지고 조선은 러시아에게 의존하게 되는 형국이 된다. 일제시대가 되어서는 일본이라는 공통의 적이 있어 잠시 가까워 지기도 하였다. 한국의 독립운동을 도와주는 등 우호적인 관계를 이어갔으나, 중국에서 마오쩌둥의 공산당이 정권을 잡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 후에는 북한을 지지하게 되어 남한과 적대관계로 돌아서게 되었다. 625전쟁에 중국이 북한을 지원하고 중국 군대를 파병해 북진통일을 막으면서 중국과 한국은 공개적으로 적대적인 관계가 된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 후 중화민국 정부는 대만으로 망명하였고, 대한민국은 대만을 자유중국으로 인정하여 수교를 유지하였다. 한국은 중국과 관계를 개선하려는 ‘모란’구상을 추진한 외교문서가 공개되기도 하였다. 나카소네 전 일본총리가 1986년에 한중의 국교 정상화를 위해 중재했지만, 당시 중국이 북한의 눈치를 보며 소극적인 태도를 취했다는 내용의 외무성 기밀문서가 공개되기도 하였다.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계기로 양국은 호전관계가 되었고, 이후 중국의 요구를 받아들여 중화민국과 단교함으로써 `92년에 수교하게 되었다. 수교는 했지만 중국은 북한과의 관계를 이어오고 있고, 중국의 불법 조업 문제, 동북공정 등 한국 입장에서는 친하게 지내기 어려운 나라임에는 틀림이 없다. 한편, 2000년에는 한중 범죄인 인도조약이 체결되었다. 하지만 ‘한국인이 제일 싫어하는 국가는’이라는 주제의 여론조사에서 1위가 중국일만큼 우리나라에서 중국은 위협적이고 민폐국가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2. 한국과 일본과의 관계
한국과 일본 관계는 한국인이라면 적대적인 감정이 드는 것이 당연하다. ‘한일전은 가위바위보도 이겨야 한다’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하지만 한국인과 일본인은 유전적으로 가장 유사하다. 한반도와 일본 열도가 지리적으로 매우 가깝기 때문에 아주 오래전, 수천년 간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서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일본과의 관계가 나쁜 이유는 일본 제국 시기 군국주의의 과거를 반성하지 않고 사과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끊임없이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역사 왜곡도 지속되고 있기 때문에 사이가 좋아지려야 좋을 수가 없다. 2015년 제16회 세계지식포럼에서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교수는 한일 관계 회복 가능성에 대해 해결책이 없다고 했을 만큼 일본에 대한 한국의 증오가 아주 뿌리 깊다. 일본과 관계가 회복이 되려면 일본보다 한국의 국력이 더욱 강해져야 한다. 만약 중국이 지금보다 더 강해져 한국과 일본 양국에 위협이 된다면 잠깐이라도 일본과 협력관계를 맺을 수도 있다. 한일관계에 있어 오직 한국과 일본과의 관계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한일관계에는 북한, 중국이 긴밀히 엮여있다. 북한의 존재는 일본이 군대를 재무장하는 계기를 줄 수도 있는 존재이다. 최근 윤석열 정부가 이른바 친일 정책을 펼치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정부가 일제시대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금을 제3자로부터 변제받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 밝혀 논란을 일으켰다. 이전 정부에서 전범기업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배상하라는 대법원의 판결을 뒤집는 발언이다. 피해자들에게 진실된 사과 한마디도 하지 않는 상황에서 제3자 변제라는 말은 우리나라 국민의 대부분은 이해하지 못한다. 이는 국제적으로 대한민국의 국력이 약하다고 알리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국민을 최우선적으로 지켜야 하는데 일본에게 이러한 입장을 내놓는 정부는 일제시대 식민지와 다른게 없다고 생각한다.
3. 중국과 일본과의 관계
한국과 일본과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중국과 일본과의 관계도 좋지 않다. 고대 일본은 중국과 대등한 위치라고 인식하였으나, 중국은 일본의 사절을 조공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중국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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