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중·미 관계 간략사 : 제2차 세계대전 ~ 1970년
2. 중·미 외교의 시작 : 핑퐁 외교로 국교 수립까지 1979년 1월 1일
3. 전략적 협력 관계 약화 : 1990년 대 초
4. 대립·견제의 관계 시작 : 1990년 대 중반
5. 전략적 동반자 관계 : 1990년대 후반
6. 전략적 경쟁자 관계 : 2000년 대
7. 중·미 관계 전망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미국은 영국과 일본에 이어 중국에 대하여 주도적인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의 패색이 완연한 가운데 미국은 유럽과 함께 아시아에서도 자신의 영향력을 확고히 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핵심은 중국 대륙이었다. 명분은 중국을 소련 공산주의로부터 방어하여 중국과의 우호와 평화를 지키는 것이다.
미국은 이러한 목적을 위하여 일본과 싸우는 장제스의 국민당에 대하여 군사적, 경제적 원조를 확대하였다. 미국은 대 일본전쟁에 장제스를 지지하는 소련을 끌어들였다. 소련은 얄타협정을 근거로 중국공산당을 원조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중소우호동맹조약’을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와 1945년 8월 14일 체결하였다. 중국공산당은 국민당과 함께 항일전쟁을 수행하고 있었다.
전쟁이 끝나기도 전에 국민당 정부는 대중의 지지를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 미국은 국민당 지도층이 부패하고 무능하며, 전쟁은 미국에 맡기고 자기들은 공산당과의 투쟁에서 이기려는 생각뿐이라는 것을 상세하게 알고 있었다. 미국은 국민당이 머지않아 치를 공산당과의 대결에서 열세라는 것을 알면서도 국민당을 지원하는 딜레마에 빠져들었다. 미국은 무조건 손을 떼는냐, 국민당을 도와 중국공산당을 섬멸 하는냐, 아니면 양측의 타협을 도모하느냐를 놓고 타협을 선택하였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민당이 중국공산당에게 패망할 때까지 20억 달러 상당의 원조를 제공하였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국민당 정부를 지원하는 한편, 1944년 패트릭 헐리 육군 소장을 충칭에 파견하여 국민당과 공산당의 연립정부 수립을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노력은 1944년부터 1949년 중국공산당이 정권을 수립하기 직전까지 계속되었다.
한광수, 미-중관계의 변화와 한반도의 미래, 삼성경제연구소
김소중, 중국을 정복하자, 백산서당
현재에 이르기까지 외교 관게 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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