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예지와 순문학운동
2. 근대적 문학운동의 문단적 의미
3. 창조파의 문장 혁신운동
4. 3 ․ 1운동의 영향
5. 문예사조의 혼란
6. 자연의 예찬
7. 주요한의 신시
제 3장 퇴폐의 문학
1. 퇴폐환경과 문학
2. 외래의 데카당 사상
3. 러시아 근대작가의 영향
4. 현실과 도피
5. ≪폐허≫의 주변
6. 그 뒤의 퇴폐문학
※ 참고문헌
1. 문예지와 순문학운동
신문학사 위에 언제부터 근대 문예사조가 등장했는지 물으면 그것이 좀 더 뚜렷한 모양으로서 사조적인 주류가 된 것은 1920년대라고 할 것이지만, 그것이 처음 선을 보이면서 등장한 것은 그것에 앞서서 1919년대의《창조》 1920년대 종합 문예 동인지. 1919년 2월 1일 일본 유학생이었던 김동인(金東仁)ㆍ주요한(朱耀翰)ㆍ전영택(田榮澤)이 도쿄에서 발행하였다. 창간호는 국판 81쪽. 창간호에는 주요한 시 , 김동인의 소설 《약한 자의 슬픔》, 전영택의 소설《혜선의 사》등이 실려있다. 창간호의 동인은 김동인ㆍ주요한ㆍ전영택ㆍ김환(金煥)ㆍ최승만(崔承萬)이다.(권영민, 『한국현대문학대사전』,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4, p.939.)
지의 동인시대라고 지적할 수 있다.
앞에 온 최남선이나 이광수의 기성문학에 대하여 반기를 들어, 극히 소박하나마 일종의 리얼리즘 같은 근대 문예사조나 그 작품수법을 의식하게 되었다. 실지로 그 뒤에 온 자연주의적인 리얼리즘은 이 창조파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20년대의 우리 시단의 주조를 이룬 상징주의도 이《창조》지에서 싹트고 있었다고 볼 때 1919년의《창조》지의 등장은 우리 근대적인 신문학운동의 위치로서 크게 보아야 할 뜻이 걸려 있는 것이다. 창조파는 우리 신문학운동의 제1기인 최남선ㆍ이광수 시대를 뒤이어 제2기로 들어선 것이며, 여기서 처음으로 근대문학사조를 받아들여 더 근대적인 신문학운동의 출발을 하게 된 것이다.
1919년 2월에 필자와 요한과 늘봄, 그 밖에 수인의 손으로 《창조》창간호가 발간되었다. 이인직의 시대를 지나서 춘원의 독무대시대까지 일인 즉 전문단이던 것은 이 《창조》의 문예운동으로 처음 깨어졌다. 이 《창조》가 순전한 문예잡지의 효시인 동시에 구체적 문예운동의 시초다. 그때에 조금 눈이 뜬 우리들은 춘원의 작품이며 사상에 많은 불만과 부족함을 가졌다…… 그 불만과 부족감은 춘원의 작품의 주조가 너무 소국부적 문제로 그 작품이 너무 감상적이며, 그의 작품의 영향이 너무 데카당스적 풍조를 청년사회에 흘렸으며, 그의 작품 그것이 당시의 소설작가지원 청년들에게 소설에 대한 그릇된 관념을 줌에 대하여서다.
- 김동인의 《조선근대소설고》
전시대의 신문학운동은 그 동기를 더 외부정세에 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최남선과 이광수의 문학은 정치의식을 계몽하기 위한 목적의식이 앞서서 문학을 하였다. 정치의식을 계몽하고 높여가는 데 문학이 가장 적의하고 효과적인 방편이라는 것, 그것도 과거의 고대문학이나 신소설의 양식이 아니고 근대 구미문학을 본받아 신문장운동에 의한 신문학이 그 새 시대를 위한 선전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가장 적당하다는 자신하에서 감행된 문학운동이었다.
권영민,『한국현대문학사1』, 민음사, 2003.
김동인, 『동인전집8』, 홍자출판사, 1964.
김윤식 외,『우리문학 100년』, 현암사, 2001.
김재용 외,『한국근대민족문학사』, 한길사, 1994.
백철, 『신문학사조사』 , 신구문화사, 1989.
안숙현, 「한국 근대극에 미친 러시아문학과 연극의 영향에 관한 연구」, 단국대 대학원,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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