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작품설명
前赤壁賦
소식은 중국 송나라 제 1의 시인이었으며 뛰어난 문장력으로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소식은 아버지 소순, 동생 소철과 함께 삼소라 불리었다. 22세 때 전사에 급제하고, 과거시험의 위원장이었던 구양수에게 인정을 받아 그의 후원으로 문단에 등장하였다. 왕안석의 신법(新法)이 실시되자 구법당(舊法黨)에 속했던 그는 지방관으로 전출되었다. 천성이 자유인이었으므로 기질적으로도 신법을 싫어하였으며 ‘독서가 만 권에 달하여도 율(律)은 읽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 일이 재앙을 불러 사상 초유의 필화사건을 일으켜 서울로 호송되어 어사대(御史臺)의 감옥에 갇히게 되었으며, 이 때 나이 44세였다. 심한 취조를 받은 뒤에 후베이성의 (湖北省)의 황주(黃州)로 유배되었으나, 50세가 되던 해 철종이 즉위함과 동시에 구법당이 득세하여 예부상서(禮部尙書)등의 대관(大官)을 역임하였다. 황태후의 죽음을 계기로 신법당이 다시 세력을 잡자 그는 중국 최남단의 하이난섬(海南島)으로 유배되었다. 그 곳에서 7년 동안 귀양살이를 하던 중 휘종의 즉위와 함께 귀양살이가 풀렸으나 돌아오던 도중 장쑤성(江蘇省)의 상주(常州)에서 사망하였다. 그는 폭 넓은 재능을 발휘하여 시문서화(詩文書畵)등에 훌륭한 작품을 남겼으며 좌담을 잘하고 유머를 좋아하여 누구에게나 호감을 주었으므로 많은 문인들이 모여들었다. 당시(唐詩)가 서정적인 데 대하여 그의 시는 철학적 요소가 짙었고 새로운 시경을 개척하였다. 대표작인 는 불후의 명작으로 널리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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