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라면광고의 역사
(1) 제1기(개척)
(2) 제2기(발전과 위기)
(3) 제3기(현재)
3. 라면광고의 역사로 본 사회흐름
4. 라면광고의 특징
5. 라면광고의 향후 전망
현재 라면은 국민 1인당 소비량 84개, 1년 라면소비량 36억 개에 달할 정도로 전 국민의 애호식품이 되었고 20세기 최고의 히트상품으로 꼽히고 있다. 하지만 라면이 처음부터 이렇게 온 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것은 아니었으니 그 성장과정과 요인에 있어서 광고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라면은 1960년대부터 생산되어 지금에 이르기까지 수 없이 많은 제품들이 등장하고 사라졌기 때문에 모든 라면광고를 살펴볼 수는 없으므로 그 중에 성공한 라면 광고를 바탕으로 시대별 라면광고의 모습과 역할, 그리고 라면광고의 모습 변화에 따른 사회흐름과 함께 라면광고의 앞으로의 방향을 살펴보도록 하자.
2. 라면광고의 역사
(1) 제1기 - 개척기
라면은 극심한 식량부족 때문에 혼분식을 적극 장려하던 정부와 기업의 시장참여 의지로 인하여 일본으로부터 기술을 도입하여 1963년 9월 ‘치킨라면’으로 삼양식품을 통하여 대량생산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사회적 배경과 식량부족에도 초창기 라면에 대하여 사람들은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오랜 미곡중심의 식생활과 라면을 섬유제품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초창기 라면광고는 이러한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기 위한 캠페인적 성격이 강하였고 이와 함께 정부의 장려정책으로 결국 라면은 제2의 주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자연 후발주자들이 라면시장에 뛰어들게 되었고 라면광고는 이제 캠페인적인 성격보다는 시장점유율을 늘리기 위한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지게 된다.
라면의 초기 개척기 시대에 광고에서 중요한 점은 라면이 몸에 나쁘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였다는 점(캠페인적인 성격)과 후발주자인 농심라면의 광고성공으로 인한 자리매김을 들 수 있다.
맨 위의 광고문구는 라면시장의 두 번째 주자인 농심의 전신인 롯데라면 광고에 삽입된 내용이다. 과장광고라 생각될 정도로 라면에 대해 근거 없는 문구들을 늘어놓아 사람들의 인식변화에 애를 쓴 모습이다. 그 밑의 광고는 선두주자인 삼양라면의 광고로 라면은 제2의 쌀이라는 것이 메인 문구로 들어가 있다.
두 번째 특징인 농심라면의 광고 성공은 당시의 사회흐름을 잘 보여준다. 당시의 사회 배경은 개발시대로 접어들면서 이촌향도 현상이 가장 활발한 시기였다. 이러한 사회 흐름을
이용하여 향수를 자극하는 광고로 도시인들에게 크게 어필할 수 있었다. 그리고 광고 또한 ‘형님 먼저 - 아우 먼저’하는 우애를 중심으로 하여 당시 최고 인기인이었던 ‘구봉서 - 곽규석’콤비를 내세웠다.
이상이 제1기로 분류할 수 있는 라면 광고의 특징들이었고 다음은 1970년대 컵라면이 등장한 제2기이다.
(2) 제2기 - 발전과 위기
이 시기의 초기 특징 첫 번째는 컵라면이 등장하였다는 점이다. 당시 컵라면은 삼양에서 출시한 제품의 이름이었다. 컵라면이 출시된 당시의 사회적 배경은 1970년대의 절대 빈곤기였지만 삼양컵라면의 광고 소구법은 컵라면이라면 언제 어디서나 좋다는 단지 이동성과 간편성만을 강조하여 실패하게 된다. 이후 1982년에 농심에서 사발면을 출시하게 되었고 비슷하게 사발면의 간편성을 강조한 광고를 내세웠다. 다만 당시 사회배경은 88년 올림픽 개최와 경제성장 등으로 인해 오히려 광고와 잘 맞았고 이후 용기면을 중심으로 생산하는 회사가 생길 정도로 농심사발면은 성공을 이루어낸다.
이 시기의 두 번째 특징은 라면의 다양화가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농심과 삼양이 양분하고 있던 라면시장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이와 차별화된 전략이 필요했고, 따라서 라면의 특징과 광고에 있어서 다양한 변화가 시도되었다. 너구리와 안성탕면이 등장하였고 농심에서는 이에 맞춰 매운맛을 강조한 신라면을 출시하였다. 광고도 지키는 자와 공격하는 자가 생겨 변화가 생겼는데 징글과 CM송을 이 시기에 사용하였다. 대표적으로는 우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