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학] 에세이스트의 책상-죽음과 음악과 고립과 그리고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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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세계문학] 에세이스트의 책상-죽음과 음악과 고립과 그리고 M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에세이스트의 책상-죽음과 음악과 고립과 그리고 M

죽음-더 이상 살아있지 않음에 대한 어떤 알려지지 않은 대가

음악-영혼의 등가

고립-오랜 시간 오직 스스로의 기준에 의해서 고독하게 살아온 사람들

M-연약하고 오만한 단독자.

에세이스트의 책상-그것이 어디에 있든 지상에서 가장 빛나는 장소
본문내용
에세이스트의 책상-죽음과 음악과 고립과 그리고 M

죽음-더 이상 살아있지 않음에 대한 어떤 알려지지 않은 대가
‘에세이스트의 책상’의 많은 부분에서는 ‘죽음’의 이미지를 엿볼 수 있다. ‘나’가 물에 빠졌던 기억,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쇼스타코비치의 는 병원에 있을 때 완성한 그의 생애 마지막 작품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요아힘과의 대화, M에 대한 묘사 등에서 죽음의 이미지는 언뜻언뜻 드리워진다. ‘죽음’은 절대적인 어떤 것, 따라서 하나 이상의 다수로 존재할 수 없으며 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을 표상하는 단어이다. 배수아는 M의 입을 통해, ‘죽음이란 실제로 구체적인 형상으로 나타나기에 앞서서 추상적인 개념으로 우리 삶의 내용을 포괄적으로 점유’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추상적인 ‘죽음’이 우리 삶의 내용을 점유한다는 것은, 절대적인 고립(고독)을 의식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이 ‘죽음’은 살아있는 인간이 가지는 진지함의 발원지이자, 정신을 움직이는 추동력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보자면 ‘정신적 빈곤과 경박함은 곧 (이미)죽음과 다를 것이 없다.’ 이처럼 죽음과 같은 절대성에 대한 인식은 ‘고립-황량함’뿐만 아니라, 이 소설의 몇 가지 키워드인 음악, 그리고 M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정신적 빈곤과 경박함은 곧 죽음과 다를 것이 없다. 이것은 M의 생각이었다. 진지한 시선이 결여된 정신은 부패하는 고기보다 더 나을 것이 없다는 것이다. 죽음이란 실제로 구체적인 형상으로 나타나기에 앞서 추상적인 개념으로 우리 삶의 내용을 포괄적으로 점유한다는 것이다. 그 기준으로 말하면, 이미 태어나는 순강부터 죽어 있는 사람들이 있다. M의 그런 견해에 의하면 요아힘도 그런 사람들 중의 한 명이었다. 그러므로 요아힘이 입버릇처럼 자신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것은 자신에게 전혀 공포나 짐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즉 자신은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더라도, 거짓말이 아닐 것이다.(P.69)

음악-영혼의 등가
영상은 개별적인 사진들의 연쇄이지만 우리는 한 컷과 다음 컷의 간극을 읽어내지 못하고 연속적인 화면으로 인식한다. 한편 언어의 세계와 실제세계와의 관계에서는 이 작용이 반대로 일어난다. 실제세계에서의 시간은 과거와 현재, 미래가 구분될 수 없고 서로 ‘관통하고 작용’하면서 흘러간다. 그러나 언어의 세계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구분하는 분절적인 세계이다. 그러므로 언어는 불완전하다.
‘나’는 언어의 ‘절대보편적인 개념’을 쫓지만, 동시에 ‘자국어가 단지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넘어설 수 있는 경계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의식의 감옥’임을 또한 인식하고 있다. 언어 자체가 불완전한데, 한술 더 떠 이국의 언어로 대화하고, ‘읽고, 마침내는 쓰’려고 하는 ‘나’의 언어는 오죽할까.
그에 비하여 음악은 서로 관통하고 작용하는 실제의 시간개념 속에서 존재한다. 그래서 음악은 인간에게서 나왔지만 인간의 영역을 뛰어넘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음악은 완전하며 절대적이다.

더, 더 많은 음악, 하고 그 목소리는 말했다. 보통 수량을 나타내는 많다,라는 표현은 이 경우에 적절한 것이 아니다. 더 아름답다 혹은 더 슬프다, 더 멀다, 더 죽어있다, 더 혼자 있다,라고 표현 할 때처럼 그 목소리는 말했다. 더……한 음악. 더 죽어 있다, 라고 우리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비교할 수 없는 절대적인 가치이기 때문이다. 손바닥을 뒤집듯이 단지 둘 중의 하나만을 가질 수 없는 문제이다. 음악은 절대적인 것이고 죽음도 마찬가지다. 더 많은 죽음이나 덜한 죽음이 존재하지 않듯이 음악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영혼의 등가에 해당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p.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