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자의 논적, 육상산에 대하여
3.주자와 육상산의 교육
주자는 중국 남송(南宋)의 사상가로 자는 원회(元晦)․중회(中晦), 호는 회암(晦庵)이고 복건성(福建省)에서 태어나 성장하였다. 성리학을 구축하였으며 주자(朱子)는 그의 존칭이고 본명은 주희(朱熹)이다. 19세에 과거에 급제하고, 24세에 임관하여 복건성 등안현(同安縣)의 주부(主簿)로 4년간 근무하였다. 때마침 정이 학통(學統)을 이은 이동을 만나 사사하고, 차츰 유교로 기울어져 신유학의 정수(精髓)를 계시받았다. 주자의 출현은 성리학이 영향을 미치는 곳이 단순히 중국에만 머물지 않았다는 점에서 동아시아 세계에서 세계사적인 사건이었다.
성리학이 중국에서 일어나게 된 까닭은 안녹산(安祿山)의 난 이후 많은 민란에 의해 당(唐)나라의 폐쇄적인 귀족사회가 허물어지면서 야기된 혼란을 계기로 관료학자(사대부)인 유학자들이 그 혼란과 모순을 불교와 도교의 사상적 약점에 돌리고, 그 극복을 유학의 재건․부흥을 통하여 이루려는 데에 있었다. 당시 유학자들의 판단으로는, 불교나 도교가 지닌 현실 대응상의 약점은 무엇보다도 가정과 사회를 멀리하며, 심지어 국가생활조차 가볍게 보는 점이었다.
한편, 성리학의 직접적인 형성 요인은 오랜 기간에 걸쳐 사상적으로 지배하던 도교와 불교로부터 유교를 독립시키려 한 데에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당시 유가들은 거의가 군신(君臣), 부자(父子), 부부 관계의 인륜의 입장의 강조나 불교는 이적의 교라는 중화 사상적 배타주의, 불교도가 공담(空談)으로 국가의 재정을 축낸다는 경제적 측면에 치중하여 그 철학 자체에 대한 본격적인 분석. 비판은 가하지 않았다.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철학 체계와 이를 기초로 하는 유교의 재정립 작업이 필요하였는데 주돈이, 정호(程顥), 정이 등이 등장해 활약하였다. 하지만 성리학은 불교․도교의 영향을 받기도 했는데, 우주․자연 및 인성(人性)에 대한 본체론적 형이상학 탐구가 깊어진 것과 철저한 심성수양(心性修養) 경향이 바로 그것이다.
성리학의 내용은 크게 나누어서 네 가지 혹은 다섯 가지 정도로 구분할 수가 있다. 첫 번째는 존재론, 두 번째는 윤리학, 세 번째는 방법론, 네 번째는 고전 주석학 및 저술, 다섯 번째로는 과거에 대한 의견이나 사창법, 권농문 기타의 구체적인 정책론과 같은 것들이다.
먼저 존재론, 이기설에 대해여 살펴보자.
성리학은 이(理)․기(氣)의 개념을 구사하면서 우주(宇宙)의 생성(生成)과 구조(構造), 인간 심성(心性)의 구조, 사회에서의 인간의 자세(姿勢) 등에 관하여 깊이 사색함으로써 한․당의 훈고학이 다루지 못하였던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내성적(內省的)․실천철학적인 여러 분야에서 새로운 유학사상을 수립하였다. 주자는 중국적인 사변의 소위 결정판을 정립했던 것이다.
주자에 의하면 형이하학적(形而下學的)인 기는 물질을 형성하는 근원이고 일기(一氣)의 유행에 따른 음양(陰陽)과 오행(五行)의 교감, 그리고 기의 결합에 의해서 만물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이때의 결합에서 오행 중의 어느 것이 우월한가에 의해서 그 사물의 성격, 성질이 결정된다. 사람들이 살고 있는 주변의 만물도 요컨대 기의 응집의 변형일 따름이라는 점은 주자에 의해서 더할 나위 없이 명쾌하게 이론화되고 체계화되었다.
사람도 기의 응집에 의해 생겨나고 기가 흩어짐에 따라서 죽는 것은 다른 모든 존재와 어떤 차이도 없다. 죽음이란 인체를 구성하고 있는 기가 본래의 기의 바다를 향해서 돌아가는 것일 따름이다. 하지만 자손들이 진심으로 제사지내면, 조상들의 기는 가까이 다가와서 모이게 되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제사라는 것에 의미가 있다. 즉 조상들의 기는 이미 흩어지고 말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소멸될 수는 없다. 주자의 기의 논리는 여기에서 중대한 모순에 직면하였다. 그는 인간의 죽음에 즈음하여 그 기는 결국에는 흩어지는 것임에 틀림없지만 다만 즉시 흩어지지 않으며 그 때문에 제사를 지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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