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편전쟁과 동시대 동아시아 3국의 정세 분석을 통한 역사의 객관성에 관하여

 1  아편전쟁과 동시대 동아시아 3국의 정세 분석을 통한 역사의 객관성에 관하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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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아편전쟁과 동시대 동아시아 3국의 정세 분석을 통한 역사의 객관성에 관하여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서론
2. 본론 – 중국교과서에 기술된 아편전쟁
일본 교과서에 기술된 개항기
한국 교과서에 기술된 개항기
3. 본론2
결론
본문내용
1. 서론
저희 조에서는 10개의 테마 가운데 제 1 의 아편전쟁에 대해서 발표하려고 합니다. 포탈에 업로드 되어있는 아사히 신문의 자료를 읽어보셨을 경우 아편전쟁의 대략적인 내용에 대해 알고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우선 아편전쟁에 관해 간단히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아편전쟁이란 간단히 말하자면, 아편무역을 둘러싸고 청나라와 영국간에 벌어진 전쟁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18세기 후반 산업혁명을 이룩한 영국에서는 홍차를 마시는 습관이 서민에게 퍼지면서 중국으로부터 대량의 차를 구입하게 됩니다. 한편, 영국은 중국에 모직물을 수출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당시 중국에서는 모직물은 야만인이 입는다는 의식이 있었고 또한 화남지방은 기후가 따뜻한 곳이었기 때문에 영국의 모직물이 수요를 넓힐 기회가 없었습니다. 무역불균형은 점차 확대되어 갔고 이에 위기의식을 느낀 영국 상인들이 해결책으로써 인도에서 아편을 만들어 중국에 수출하자 단숨에 무역적자는 해소됩니다. 아편의 유입과 범람으로 중국의 국내경제는 혼란에 빠지게 되고 이에 중국정부는 임칙서를 광저우에 특사로 임명합니다. 그는 아편밀무역선을 단속하여 아편을 폐기처분하고, 영국상인들을 추방했는데, 이에 영국의회가 전쟁을 결정 1840년 아편전쟁이 발발했고, 청나라가1842년 배상금지불, 홍콩할양, 상하이등의 항구개항을 약속한 난징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아편전쟁은 막을 내리게 됩니다.
동아시아 삼국의 역사에서 아편전쟁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저희 조에서는 아편전쟁을 단순한 하나의 사건으로 보지 않고, 두 가지 측면에서 커다란 의미를 지닌 사건으로 규정하고자 합니다.
우선, 이 사건을 서양 제국주의가 동아시아에 진출하는 과정에서 최초의 충돌점으로써 설정하고자 합니다. 다음으로, 19세기 이후에 있어서 동아시아 3국의 운명을 결정짓는 커다란 전환점으로 보고자 합니다. 즉, 아편전쟁을 단순히 청과 영국의 전쟁이라는 개별 사실로 보지 않고 동아시아 3국이 개항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이 사건이 연쇄작용의 시발점으로서 아편전쟁을 보고자 합니다.
다만, 각 교과서에서 아편전쟁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양)이 다르고, 특히 한국과 일본의 교과서의 경우 아편전쟁에 대한 언급이 적거나 없기 때문에 아편전쟁을 다룬 직접적인 교과서 서술의 비교는 불가능하다고 생각됩니다.
따라서 여기서는 우선, 교과서 속 아편전쟁이라는 개별적 사건의 서술에서 범위를 넓혀, 아편전쟁 전후에 있어서의 동아시아 3국의 국내외 상황에 대해 각국의 교과서에 서 어떻게 서술하고 있는지 그 표면적 특징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과정에서 중국 교과서의 경우 “아편전쟁”, 일본 교과서의 경우는 “흑선의 출현~메이지유신”, 한국의 경우는 “세도정치~강화도조약” 부분의 서술을 논의의 범위로 삼고자 합니다.
그 다음, 이에 덧붙여서 3국의 교과서가 각각 다루고 있는 내용 및 서술적 특징의 이유에 관한 저희 나름의 분석을 하나의 가설로서 제시하고자 합니다.
먼저 중국의 역사교과서에서는 아편전쟁을 전후로 한 국내외 상황에 대해 어떻게 서술하고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 본론 – 중국교과서에 기술된 아편전쟁
아편전쟁은 총 2번에 걸쳐 일어났습니다. 제 1차 아편전쟁 이전의 중국은 청나라 통치 시기였습니다. 당시 중국은 청조의 구 시대적 봉건사회였는데, 사회 전반에 걸쳐 혼란한 상황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사회적으로 토지가 황실이나 대관료 혹은 대지주들에게 집중되어 있어서 수많은 농민들이 토지를 잃고, 정치적으론 매위매관이 성행하는 등 혼잡했습니다. 또한 군대는 훈련도 하지 않고 병관이 일을 멈췄으며 규율 또한 엉망인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청나라 정부의 천자와 수많은 대신들은 서양에 대해서 무지몽매한 상태였습니다. 당시의 사회상에 대해 교과서에서는
”まさしく長い間にわたって清朝統治集団は自ら驕り高ぶって、西方の状況を理解しようとはしなかったので、アヘン戦争が勃発しえから清朝統治集団は敵情に対して何も知らず、驚くべき事態に至った。中国とイギリスの交戦は2年にわたってが、道光帝はイギリスがどこにあるかも知らなかった。”
라고 기술하고 있어 당시의 청의 지배층이 얼마나 서양세계에 대해 무관심 했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편 영국은 19세기 상반기에 일찍이 산업혁명에 성공해 자본주의 열강이 되었고 넓은 시장과 원료산지의 확보를 위해 대외확장노선을 강화해가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18세기 중반부터의 중국과 영국의 무역상, 영국이 중국에 팔던 주요상품은 모직물 등 이었고 중국은 영국으로 차나 생계제약원료 등을 팔았는데 중국의 대영무역이 더 많은 흑자를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무역의 불균형을 극복하기 위해서 영국은 중국에 인도에서 재배한 아편을 밀수출하여 중국으로부터 대량의 은화를 취하게 됩니다. 교과서에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