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Ⅱ. 처용가
1. 내용
2. 문학적․민속학적 측면
Ⅲ. 도솔가
1. 내용
2. 문학적․민속학적 측면
Ⅳ. 처용가와 도솔가의 비교
※ 참고문헌
향가는 삼국 시대 말엽에 발생하여 통일 신라 때 성행하다가 그 말기부터 쇠퇴하기 시작하여 고려 초까지 존재했던 우리나라 고유의 정형시가이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아직 우리말을 기록할 한글이 없었기 때문에 순수한 우리글로 표현하지 못하고 향찰 및 이두로 표기하였다.
향찰이란 신라 시대에 한자의 音과 訓을 빌려서 우리말을 表音式(사람의 소리를 그대로 나타냄)으로 나타내던 글, 즉 넓은 뜻의 이두를 뜻하며, 이두는 신라 이후 한자의 음과 훈을 빌려서 한자를 우리말 식으로 적어 쓰던 일종의 맞춤법이었다.
예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문헌에 의하면, 향가의 뜻은 사뇌가, 도솔가, 또는 국풍, 자국지가라고 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곧 국가(나라의 노래), 신라 시대 고유의 노래, 동방 고유의 노래라는 뜻이다. 국문학자들은 좁은 뜻으로는 '신라의 가요' 또는 '고향의 노래' 등 여러 가지 해석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우리말로 된 노래라는 뜻에서 향가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 향가는 신라 제26대 진평왕 때의 "서동요"에서 고려 제4대 관종 때 균여 대사가 지은 "보현십원가" 11수에 이르기까지 약 370여 년 동안 성행한 듯 하다. 그러나 현재까지 남아 있는 작품으로는 "삼국유사"의 14수, "균여전"의 11수를 합해 모두 25수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다. 이 향가들을 형식면에서 구분해 보면 4구체, 8구체, 10구체의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4구체로 된 향가는 "서동요", "풍요", "헌화가", "도솔가" 등이며, 8구체로된 작품은 "모죽지랑가", "원가", "처용가" 등이다. 그리고 10구체로 된 작품은 "혜성가", "원왕생가", "제망매가", "찬기파랑가", "안민가", "도천수대비가", "우적가", "보현십원가" 등이다.
이들 향가의 정확한 연대 대해서는 여러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가장 일반적인 것을 보면, "삼국유사"에 실린 향가는 가장 오래 된 "서동요"(599년 이전)로부터 "처용가"(879년)에 이르는 320여 년 동안 생성된 것입니다. 한편 균여가 지은 11수는 973년, 그의 생존 연대 이전에 지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따지면 370여 년 간에 걸쳐 이루어진 향가가 오늘날 전해지고 있는데, 향가들은 대개 오늘날 우리들이 읽어서 마음에 큰 감동을 받는 시나, 사람의 높고 아름다운 공덕을 기리고 찬양하는 송가와 같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천지 신명을 감동시킨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향가 속에는 우리 조상들의 미래 세상에 대한 기원(발원)과 극락왕생을 비는 신앙이 깊이 담겨 있다. 또한 임금과 신하간의 의리, 벗과 동기간의 우애 등이 감명 깊게 표현되어 신비로운 느낌을 자아내게 한다. 그래서 일찍이 그 가치를 높이 인식한 신라 제 51대 진성여왕은 대각간 위홍과 대구 화상(중을 높여서 부르는 말. 수양을 많이 한 중)에게 명하여 흩어져 있는 향가를 모아 책으로 묶게 하였다.
그리하여 위홍과 대구 화상은 그 향가들을 전국에서 찾아 모아 "삼대목"이란 책으로 엮어 오래 보존케 했던 것이다.
그런데 향가집 "삼대목"은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아깝게도 그만 없어져 버리고,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은 앞에서 말한 25수뿐이다.
Ⅱ. 처용가
1. 내용
東京 기 라라
밤드리 노니다가
드러 자 보곤
가로리 네히러라.
두른 내해엇고
두른 누기핸고.
본 내해다마
아 엇디릿고.
두른 누기핸고.
본 내해다마
아 엇디릿고.
東京 밝은 달에
밤들이 노니다가
들어 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러라.
둘은 내해였고
둘은 누구핸고
본디 내해다마는
빼앗은 것을 어찌하리오.
처용가는 처용이 지은 향가로 신라 헌강왕 5년 897년에 지어진 8구체 형식의 향가이다.
내용을 간략히 살펴보면 처용이 외출한 사이에 역신이 그 아내를 빼앗은 것을 보고 이 노래를불렀더니 역신이 처용에게 잘못을 빌었다는 내용이다.
당시 시대적 배경과 내용을 서술해보면 다음과 같다.
신라 제49대 헌강왕 때의 일이다.
이 때는 이미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여 문화의 황금 시대를 이루었다. 따라서 백성들은 살림살이가 넉넉해져 한결같이 태평 세월을 누리고 있었다. 서울에서 지방에 이르기까지 집과 담이 연이어 졌고 서울에는 초가라고는 한채도 없었으며, 숯으로 밥을 지어 연기가 나지 않았다. 풍악과 노랫소리가 길게 이어져 끊이지 않았고, 바람과 비는 사철 순조로워 풍년이 계속되었다.
그렇듯 태평스러운 어느 날이었습니다.
1. 『鄕歌文學論과 作品硏究』, 나경수, 집문당, 1994
2. 삼국유사 신역, 이가원, 태학사, 1991
3. 신라 향가의 어휘 연구, 서재극, 계명대학교 출판부, 1975
4. 향가 해독법 연구, 김완진, 서울대학교 출판부, 1980
5. 『문학으로 본 처용가「대동문화연구」(별집1)』,정병욱,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
1972.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