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조영래 인물평가
2. 본론
1) 인물의 삶
2) 영향과 평가
3. 결론
‘조영래’라는 이름을 처음 접하게 된 건 ‘전태일 평전’이라는 책을 통해서이다. 평전이라는 형식이 넟설었던 고등학생 때, 젊은 노동자의 죽음이 무슨 큰 일 인가 생각했었다. 하지만 글을 다 읽고 나서, 삶에 대해서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연륜 만이 아니며, 삶에 대해 얼마나 바로보고 사랑을 가질 수 있는가의 여부에 따라서 위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최근 서울대에서 조영래 기념관을 건립, 추진하고 있다. 폐암으로 43세의 생을 마감하면서 그가 했던 일들이 재평가 되고 있는 것이다. 여러 해 전 책을 통해 한 청년(전태일)의 삶을 말 한, 또 한 사람(조영래)의 삶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크다. 이러한 생각에서 운동가로서, 인권변호사로서, 또 순수한 자연인으로서 조영래가 겪어온 과정을 살펴보고,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그러나 인물의 뛰어남에 비해 그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자료가 부족해, 그를 추모하는 모임에서 발간한 [진실을 영원히 가두어 둘 수는 없습니다.]라는 책을 주로 참고하고, 각종 언론에서 그에 관한 보도를 자료로 활용한다.
2. 본론
이 사건을 계기로 하여, 우리는 국가와 권력의 존립근거에 대해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국가란, 그 구성원인 국민의 인간적 존엄과 기치를 보장하고 실현하기 위해서만 존재할 정당한 이유를 지니는 것입니다. 만약 국가의 공권력이 거꾸로 국민의 인간적 존엄성을 훼손하고 인간적 가치의 실현을 제약하는 파괴적 힘으로 작용하게 된다면, 그 같은 공권력은 더 이상 존재하여야 할 의의를 상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1) 인물의 삶
안락할 수 있었던 수석 합격생
여느 법조인처럼 그도 안락한 삶을 살 수 있었다. 사람들이 그를 부러워할 때 그가 장밋빛 미래를 꿈꾸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그는 서울대 수석 입학생이었다. 굳이 수석이라는 말을 강조하지 않더라도, 근엄한 법복을 입은 검사나 변호사의 미래가 보장된 법학과 학생이었다.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법학과에 진학한 그는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 그가 대학에 입학한 1965년에 한일회담이 있었고, 그도 굴욕적인 정부의 처사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했다. 친구들이 시위 참여 때문에 징계 처분을 받았지만, 수석 입학생인 조영래는 그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그런 그가 뒤늦게 사법 시험을 준비했다. 4학년 때였다. 사람들의 자유로운 발언조차 보장하지 않는 세상을 한두 번의 시위나 몇 장의 유인물을 가지고 변화시킬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여느 학생들처럼 유신에 대해 토론하고 집회에 참석하기도 했던 그는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변화시키기 위한 행동을 직접 할 생각은 못했다. 친구들은 그에게 우려의 눈길을 보냈다. 변호사가 되겠다는 조영래는 그들의 눈에 변절자로 보였다. 당시 그와 함께 시대를 걱정하며 공부했던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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