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집현전의 기능과 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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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사] 집현전의 기능과 변천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들어가며
본론
Ⅰ. 집현전의 연원
Ⅱ. 집현전의 직제
Ⅲ. 집현전의 기능
Ⅳ. 집현전의 혁파
Ⅴ. 집현전과 홍문관
결론
본문내용
들어가며
조선이 건국되고 유교를 표방하면서 유교주의 국가로서 갖추어야 할 의례·제도의 확립이 필요했고 또 대명사대관계(對明事大關係) 라는 어려운 과제도 있었다. 이 두 과제를 원만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인재의 양성과 문풍(文風)의 진작이 필요하였다. 이를 위해서1420년(세종 2) 학문연구기관인 집현전을 궁궐 안에 설치하게 되었다.


본론
Ⅰ. 집현전의 연원
집현전 제도는 중국에서 연원한 것으로서 한(漢)나라 이래 있어 왔다. 그러나 제도가 정비된 시기는 당나라 현종 때로서, 학사(學士)를 두고 시강(侍講 : 강의)·장서(藏書 : 책의 보관)·사서(寫書)·수서(修書)·지제고(知制誥 : 왕의 교서 등을 지음) 등을 담당하게 하였다.
우리나라에도 오래 전에 이 제도가 도입되어 이미 삼국시대에 유사한 제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집현전이라는 명칭이 처음 사용된 것은 고려 인종 때이다. 연영전(延英殿)을 집현전으로 개칭하고 대학사(大學士)·학사(學士)를 두어 시강 기관(侍講機關)으로 삼았지만, 충렬왕 이후 유명무실한 기관이 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도 정종 때 집현전이 설치되었으나, 얼마 뒤 보문각(寶文閣)으로 개칭했고, 이것마저 곧 유명무실해졌다. 그러나 조선 초기의 과제를 원만히 수행하기 위해서 세종 2년에 집현전을 궁궐 안에 설치하게 되었다.


Ⅱ. 집현전의 직제
설치 당시의 직제는 영전사(領殿事, 정1품)·대제학(大提學, 정2품)·제학 (提學, 종2품) 각 2인, 부제학(副提學, 정3품)·직제학(直提學, 종3품)·직전(直殿, 정4품)·응교(應敎, 종4품)·교리(校理, 정5품)·부교리(副校理, 종5품)·수찬(修撰, 정6품)·부수찬(副修撰, 종6품)·박사(博士, 정7품)·저작(著作, 정8품)·정자(正字, 정9품)를 두었다.
이 중 제학 이상은 겸직으로서 명예직이었고, 부제학 이하가 전임관, 즉 전임학사(專任學士)였다. 따라서, 집현전의 실무 책임자는 부제학으로서 행수(行首)라고도 하였다.
집현전의 전임관, 즉 학사의 수는 설치 당시에는 10인이었다. 그러다가 1422년에는 15인, 1426년에는 16인, 1435년초에는 22인, 그
참고문헌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23」, 「한국사28」
한길사, 「한국사7」, 「한국사8」
최승희, 「집현전 연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브리태니커 온라인 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