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사상] 공자의 인간관

 1  [유학사상] 공자의 인간관-1
 2  [유학사상] 공자의 인간관-2
 3  [유학사상] 공자의 인간관-3
 4  [유학사상] 공자의 인간관-4
 5  [유학사상] 공자의 인간관-5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유학사상] 공자의 인간관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공자는 중국 고대의 사상가 유교의 개조(開祖). 노(魯)나라 창평향 추읍(昌平鄕 諏邑: 지금의 山東省 曲阜의 남동)에서 태어났으며, 자는 중니(仲尼). 이름은 구(丘). '공자'의 '자(子)'는 존칭이다. 은(殷)왕족의 혈통을 이어 태어났다. 아버지의 성은 공(孔), 자는 숙량(叔梁), 이름은 흘(紇)이며 어머니는 안씨(顔氏) 집안으로, 이름은 징재(徵在)이다. 아버지는 제(齊)나라와의 싸움에서 군공(軍功)을 세운 부장(部將)이었으나, 공자가 3세 때 별세하여 빈곤 속에서 자랐다.
그는 "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이라고 스스로 말했듯이 공부에 힘썼다. 노나라의 창시자로 주왕조(周王朝) 건국의 공신이기도 했던 주공(周公)을 흠모하여 그 전통적 문화습득에 노력했으며, 수양을 쌓아 점차 유명해졌다.
처음에는 말단 관리였으나, 50세가 지나서 노나라의 정공(定公)에게 중용(重用)되어, 정치가로서의 탁월한 수완을 발휘하였다. 그의 계획은 노나라의 실력자인 3중신의 세력을 눌러 공실(公室)의 권력을 회복하고, 주공의 정신을 살린 질서있는 문화국가를 건설하려는 것이었다.
그의 계획이 드러나 BC 497년, 56세 때 실각하고 그 후 14년간 문하생들을 데리고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유세(遊說)를 계속하며 이상실현을 꾀하였으나, BC 484년, 69세 때 그 불가능함을 깨닫고 고향에 돌아가 제자들의 교육에 전념하였다. 이 무렵 아들 이(鯉)와, 고제자(高弟子) 안회(顔回) 및 자로(子路)가 잇달아 죽는 불행을 겪었고, 74세로 자공(子貢)/증삼(曾參) 등 뛰어난 제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타계하였다.
제자는 모두 3000여 명이며, 특히 육예(六藝: 禮/樂/射/御/書/數)에 통한 문인(門人)이 72명이라고 한다. 그는 '敎人不倦(인간을 가르치는 것은 멈출 수 없다.)'이라고 술회했던 것처럼, 이상을 미래에 건 위대한 교육자였다.
그의 언행은 를 통해서 전해지고, 그의 사상을 알아보기 위한 확실한 자료도 밖에 없으며 이는 제자나 제자의 제자들이 기록한 것이지 공자 자신의 저술은 아니다. 오경(五經)을 편찬하였다고 전하나, 이는 교육목적에 따라서 , 등의 고전을 정리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면 이제부터 공자가 생각한 바람직한 인간상에 대해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다. 공자는 바람직한 인간상을 자기 성장을 통해 하늘을 닮는 인간의 모습에서 찾았고 자가 교육과 자신의 의지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그리고 인간을 인(仁)의 갖춤 여부에 따라 군자(君子)와 소인(小人)으로 나누었다.

논어 3.3에는 이런 말이 있다.
子曰, “仁而不仁, 如禮何? 人而不仁, 女樂何?”
(공자가 말하였다. “사람이고서 인을 갖추지 못하면 예같은 것에 어찌할 것인가? 사람이고서 인을 갖추지 못하면 악같은 것에 어찌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