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의역사] 남제서
백제
가라
‘東夷 高句麗國’
▷ 중국정사에서 나타나는 고구려의 표기를 살펴보면 한서에서 진서까지는 高句驪 또는 高句麗로 표기하였으며, 약칭으로 句驪 또는 句麗라고 표기하여 왔다. 송서 이후에서는 양서를 제외하고는 모두 高句麗 또는 高麗로 그 표기가 통일되고 있다.
‘高麗王 樂浪公 高璉(고연)’
▷ 낙랑공이란 장수왕에게 주어진 봉작이다. 역대 중국왕조에서 한민족의 유력한 제왕에게 낙랑의 명칭으로 봉작한 예가 다수 적출된다. 즉 고구려의 장수왕과 문자명왕이 낙랑공이라는 봉작을 받고 있으며, 신라의 경우 진흥왕 이후 진지왕과 무열왕, 효소왕을 제외하고 성덕왕까지의 7왕이 낙랑군공 혹은 낙랑군왕이라는 봉작을 받고 있다.
▷ 고연은 고구려 제 20대 장수왕을 가르킨다. 여기서 왕의 성을 한번 짚어보자면 고구려 건국 이후 동명성왕 고주몽 이후 유리왕부터의 소노부(消奴部) 출신의 해씨(解氏)가 모본왕까지 이어지다가 태조왕 고궁이 왕위를 계승하면서 계루부 고씨가 이후로 쭉 이어지게 된다. 일설에는 태조왕 이후 계루부 왕실의 권위를 높이기 위하여 계루부의 조상인 주몽을 해씨의 조상인 유리왕 앞에 올려놓고 주몽을 개국시조로 삼았다는 설도 있다.
‘[魏]오랑캐는 여러 나라의 사신 관저를 두었는데, 齊나라 사신의 관저를 제일 큰 규모로 하고 고[구]려는 그 다음 가게 하였다.’
▷ 당시 고구려와 남․북조간의 외교관계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즉, 비록 고구려가 남․북조로부터 피봉되고 있으나, 실제에 있어서는 거의 대등한 입장에서 교섭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그러한 외교적 관계는 곧 고구려의 강성함에서 연유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東夷의 조그마한 貊國맥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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