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존해야 하는 개념
# 픽션과 논픽션
# 시간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 마치며
- ‘규정짓는 것’과 ‘규정지을 수 없는 것’과의 괴리
남에게 힘들다고 말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나는 그것을 극복하기 보다는 잊으려 노력한다. 그러나 잊는 것조차 쉽지 않을 때, 스스로에게 기대어 보고 싶은 괜한 투정에, 그리고 그것이 정말 가능할 것만 같은 한때의 호기에, 무작정 밤길을 돌아다녀 본다. 주변이 어두우니 잡념은 사라지지만 대신 그 자리엔 공허한 빈자리만이 남는다. 옛 일들을 떠올려 보려고 노력하지만 감정은 사라진 단편적인 추억들만을 기억하는 내 모습에 적잖이 당황하게 된다. 변화했다는 것은 느낄 수 있지만 구체적으로 뭐가 변한 건지 알 수가 없다. 개념은 존재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물론이지....."
"꽃도 마찬가지야. 어느 별에 사는 꽃 한 송이를 사랑한다면 밤에 하늘을 바라보는 게 감미로울 거야. 별들마다 모두 꽃이 필테니까"
"사람들에 따라 별들은 서로 다른 존재야. 여행하는 사람에겐 별은 길잡이지.
또 어떤 사람들에겐 그저 조그만 빛일 뿐이고, 학자인 사람에게는 연구 해야할 대상이고, 내가 만난 사업가에겐 금이지. 하지만 그런 별들은 모두 침묵을 지키고 있어. 아저씬 누구도 갖지 못한 별을 가지게 될거야....."
문득 셍떽쥐베리의 소설 ‘어린왕자’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별은 하나의 별일 뿐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별을 보면서 스스로의 잣대에 따라 각기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별이 사라지는 순간 어떤 이에게 그것은 인지할 가치조차 없는 무의미한 현상일 수도 있고, 수년간의 연구업적을 증명하는 쾌거일수도 있으며, 평생토록 믿고 의지하던 반려자가 사라지는 경험일 수도 있다. 실존하는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개인 나름의 소중한 권리이며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미적 철학이기도 하다.
그러나 가끔 우리는 스스로가 맞추어둔 틀 속에서 사고의 범위를 고정시켜 버린다. 눈을 감고 누군가를 떠올려 보자. 몇 안되는 단편적인 이미지들이 제일 먼저 떠오를 것이다. 그렇다고 그러한 이미지들의 조합이 실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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