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헤스의 픽션들에 대해서
2. 기호학, 상호 텍스트성, 해체주의, 환상적 사실주의, 독자 반응 이론, 마술적 사실주의, 후기 구조주의, 포스트모더니즘…
3. 환상문학과 수사학, 상상의 구축물.
4. 냉소는 언제 어디서나 편리하고 고상한 방법이나 공허할 뿐...
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아르헨티나에 머물렀었던 폴란드의 작가인 뷔톨르 곰브로비치(Witold Gombrowicz)는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떠나면서 유럽행 배 위에서 부두를 향해 이렇게 소리쳤다고 한다. 그는 새로운 세대가 보르헤스의 영향력에 굴복하거나 혹은 대항하는 것 이외에는 보르헤스에 대한 다른 대처방안이 없으리만큼 보르헤스가 20세기 문학체제 안에서 막강한 세력으로 자리잡아 가는 것을 이미 간파했던 것이다.
나는 젊으니까, 앞으로 보르헤스를 죽여야 할 것이다(설마 ‘보르헤스는 이미 1986년에 죽 었다’ 라고 반문하시지는 않을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곧 나는, 그것이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나는 왜 보르헤스가 살아있는지조차 도저히 모르겠기 때문이다. 즉, 나에게 있어 보르헤스는 죽이기에 앞서 우선 ‘살려놓고 봐야 할 일’ 이었다.
사실 보르헤스를 처음 접해본 것은 내가 고등학생일때, 학교 도서관에서였다. 당시만 해도 혈기왕성한 나는 마치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듯, 단순히 ‘유명세’ 에만 혹해서 보르헤스의 단편집(아마 ‘불한당들의 세계사’ 였을 것이다)을 겁 없이 들춰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곧이어, 있지도 않은 책을 있다고 태연하게 거짓 주석을 달아놓질 않나, 느닷없이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거짓이라는 둥 어이없고 황당무계한 폭탄 선언을 터뜨리질 않나 ― 여느 작가들의 글쓰기와는 너무나 다른 그의 ‘가공할 만한 행패(?)’ 에 세계 챔피언에게 얻어터지는 얼뜨기 신참 복서처럼 아주 혼쭐이 난 채 ‘진짜 뭐 이런 책이 다 있담??’ 하고 아직 분이 덜 풀린 채로 책을 덮었던 기억이 난다. 왜냐면 나는 그 때(그 때나 지금이나 별로 차이는 없지만)정말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서 3년 후, 이 ‘스페인어권 명작의 이해’ 수업시간에 드디어 보르헤스의 단편들에 대해 수업을 시작하게 되었을때, 나는 묘한 흥분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쾌감을 느꼈다. 그것은 뭐랄까, 이제 드디어 적수를 만났다는 느낌이기도 했고, 뭔가 대단한 한 건을 잡은 듯한 느낌이기도 했다. ‘이번에야말로 보르헤스를 아주 갈기갈기 해체시켜놓을 절호의 기회야. 그래. 예전처럼 당하고 있지만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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