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중세대학의 성립 배경
⑴ 의식의 변화
⑵ 인구의 증가
⑶ 비약적인 경제 발전
⑷ 훈련된 전문 직업인의 수요가 증가
Ⅱ。중세의 대학
(1) 볼로냐 대학
①볼로냐 대학의 출현
②학생 조합과 코뮌
③학생중심 대학
④학생 조합의 운영
(2)파리대학
①파리대학이 학문의 도시로 각광받게 된 이유
②학교군의 형성과 파리대학
③ 파리대학의 형성과정
④파리대학, 도전과 응전
맺음말
볼로냐 대학은 인문․의과대학이 생기기 전까지 이탈리아 외부지역에서 온 학생들로 이루어진 울트라몬타네 조합(Ultramontane University)과 알프스이남 즉, 이탈리아 반도와 그 주변에서 온 사람들로 구성된 학생조합인 카살피네 조합(Cisalpne University)으로 이루어져 있었다.(두 학생조합은 각기 선출한 조합장, 즉 렉토르를 갖고 있었다.)
이들 주 조합대학은 몇 개의 동향단으로 구성되어 이었다. 동향단은 총회에서 각각 자신들의 대표인 콘실리아리우스(Consiliarius)를 선출했고 이들 콘실리아리우스는 렉토르를 선출하고 렉토르에게 예속되어 조언자, 자문위원역할을 했다.
그러나 한 가지 예외가 이었는데 저 먼 동향단은 그들의 대표이름을 프록터라하고 사법권을 행사할 뿐 아니라 앞서의 두 조합에서 독자적인 위치에 있었다.
학생조합, 더 엄격히 말해서 그 집행 위원회는 교수를 채용하는 권한, 수업료, 징수권 등 학칙에 규정된 사항을 집행한다는 점에서 렉토르는 인사권, 재정, 행정, 사법권을 모두 행사 하였다.
교수 임용절차는 투표형식을 통해 소정의 교수를 선정하였으며 그렇게 선출, 초빙된 선생들은 그들의 관할권을 준수하겠다는 서약을 했다. 강의 내용, 자료, 진도 등에 대해 책임을 지고, 그 수준에 미치지 못했을 때 벌금을 물어야 했다. 이러한 지나친 학생조합의 통제는 좋은 교수들을 학교에서 떠나게 했고, 또 바라는 교수를 초빙하기 어렵게 하였다.
파리대학과 비교해 볼 때 선거를 통하여 렉토르를 선출한다는 점에서 민주적인 외형을 갖추고 있지만 권한집행, 결정 과정은 훨씬 더 소수의 손에 집중되어 있었다. 모든 일상의 일과 집행은 렉토르를 중심으로 한 집행부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과두정에 가까운 것이었다. 또한 회집의 횟수가 파리대학과 비교해볼 때도 훨씬 적었다고 한다.
볼로냐 대학이 학생대학이라는 보다 높은 명분에 비해서 실제로 오히려 권력집중의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 같은 전제에 가까운 학생 조합의 대학운영 주도권은 차츰 약화되었고 14세기 중반에 코뮌들에 의한 교수들의 급료가 지불되기 시작하면서 이로 인해 학생들은 차츰 가르치는 사람들을 임명하는 통제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14세기 후반에 이르러 코뮌은 대학의 제반사항들에 대해 거의 독점적인 통제력을 행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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