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조선족의 코리안 드림
Ⅲ. 조선족 사회에 미친 영향
Ⅳ. 한국사회에 미친 영향
Ⅴ. 맺음말
조선족의 중국이주는 17세기초로 소급된다(추영춘, 4-13). 조선족의 간도유입은 봉금령(1677년 발령)이후 만주족 이외의 민족의 만주이주는 금해졌지만 1870년에 이미 28개 조선족 마을이 있었으며 1881년 봉금령 철폐이후 본격적인 이주가 시작되었다(김규방 외, 7-18). 일제의 잔혹한 수탈피해는 1910년부터 제 2 차 이주가 시작되었으며 1931년 만주사변 후에 조선족의 강제이주로 조선족의 만주이주가 증가되었으며 최근에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으로 천진, 청도 등으로 확산되어 제 3 의 조선족 이주가 이루어지고 있다.
연변 조선족 자치주는 1952년 9월 3일 자치구로 출범했다. 그러나 1955년 4월 자치주로 격하했다(심의섭 등, 1994, 241-244). 초대 주장(행정책임자)인 주덕해는 애초 길림성의 장백현과 흑룡강성 동부의 영안현, 동녕현까지 포함하는 성급 자치구를 구상했다. 그러다 57년 민족 정풍운동때 지방민족주의자로 비판받았다. 그 결과 조선족 인구비율이 2%밖에 안되는 돈화가 연변조선족 자치주에 포함됐다. 1982년도 인구센서스에 의하면 돈화시는 한족이 92.45%, 조선족은 5.28%이었다(전송림, 83). 이 때문에 자치주에서 조선족 인구비율이 결정적으로 낮아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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