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가 프로필과 역사적 배경
2. 작품 줄거리
Ⅱ. 본론
1. 문제적 장면 (법적인 논의의 대상으로 삼을 만한 대목)
2. 예술과 외설, 그리고 법
3. 작성자의 감상, 해석, 논평
Ⅲ. 맺음말
참고문헌
1. 작가 프로필과 역사적 배경
현대시의 시발자로 불리는 기욤 아폴리네르 Guillaume Apollinaire (1880-1918)의 일생은 그의 경쾌하고 화려한 인상과는 달리 슬프고 너무 짧은 일생이었다. 그는 이탈리아 로마 태생으로 누구인지 확실하지 않은 아버지와 폴란드에서 이주해온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다. 향락과 도박을 좋아하는 어머니를 따라 남프랑스 지방의 칸, 니스 등지를 옮겨 다니며 그곳에서 고등학교를 나오고 19세 때에 어머니와 함께 파리로 올라왔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에 많은 독서를 했고 이 때 폭넓은 교양을 쌓았다. 파리의 생활은 어려워 은행의 말단 행원의 일을 해오다가 한때는 어떤 부유한 독일 가정의 가정교사로 초빙되어 독일에 가서 일하기도 했다. 이 동안에 거기에 다른 가정교사로 와 있던 영국 소녀 애니라는 처녀를 만나 사랑에 빠지나 얼마 안 되어 실연의 고배를 마시게 된다. 이 때의 착잡한 심정을 노래한 것이 유명한 '사랑 못받는 남자의 노래'이다.
파리로 돌아와서는 신문 기사를 쓰거나 잡지 등에 주로 에로틱한 글을 기고하여 생활을 하면서 앙드레 살몽, 막스 자콥 등 문인들과 문예지를 펴내기도 하고 화가 브라크, 피카소, 블라맹크 등 소위 당시 화단의 전위파들과 친교를 맺어 예술 운동을 하기도 했다. 특히 그는 전위파 예술 운동에는 언제나 선두에 서서 활약했는데 입체주의, 미래파, 흑인 예술, 환상파, 그리고 초현실주의 등 새로운 유파나 이즘이 나올 때마다 그는 선구자이며 또 그 운동의 강력한 이론가이기도 했고, 초현실주의라는 말은 그의 창작이다.
1913년 그가 33세 때 그의 첫 시집 이 출판되어 성공했다. 제1차 세계 대전을 전후한 무겁고 음울하고 불안한 유럽 사회에 그의 새롭고 신기하고 경쾌하고 애수 섞인 유머는 인기가 있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자 그는 비록 외국 국적을 가졌으나 자원하여 출전했다. 그는 "나는 모든 것을 프랑스에 빚지고 있다. 프랑스를 위해 싸우는 것은 나의 최소의 봉사다"라고 했다. 1916년 그는 전장에서 포탄의 파편으로 머리에 부상을 입어 두 번이나 뇌수술을 받았고 결국 이것이 원인이 되어 1918년 '아름다운 빨간 머리'로 유명한 젊은 부인의 팔에 안겨 39세를 일기로 죽었다.
알렉상드리앙, 최복현 역, , 강천, 1997.
조은섭, , 밝은세상, 2003.
이진성, “아폴리네르의 모더니즘과 새로운 정신: 그의 생애와 문학”, 51, 1997.
황현산, , 문학과지성사, 1990: 제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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