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칠지도와 임나일본부
1. 칠지도란?
1)칠지도의 제작시기
2)칠지도의 제작이유
3)검토
2. 임나일본부란?
1)임나일본부의 근거
2)임나일본부의 비판
3)임나일본부의 현실
Ⅲ. 결론
七支刀…좌우 세개 위로 한 개 총 일곱개의 가지를 가진 길이 74cm의 창모양 철제 칼
날의 앞 뒤에는 금으로 상감한 명문 총 61자가 새겨짐
백제의 왕세자가 일본에 준것으로 현재 일본 나라현 덴리시 이소노카미신궁에 보관되어 있음
왜와 삼국(특히 백제)의 관계, 임나일본부와 관련하여 논쟁의 중심에 있는 유물
무엇이 문제가 되는가?
언제 만들어서 언제 준 것인가?
어떤 이유에서 백제는 왜에게 칠지도를 준 것인가?
백제의 어느 왕세자가 왜왕한테 준것만은 현재까지는 이견이 없는듯하다
일본 학자들의 해석
- [서진 태시 4년]인 268년
일본서기에 기록된 신공황후의 삼한 정벌연대를 249년이라고 봄, 그와 가장 가까운 시기에서 태(泰)로 시작되는 중국연호 찾음, 초기 일본학자 주장
- [동진 태화 4년]인 369년
일본서기 신공황후기 기년을 편년 수정(120년을 더함), 그와 가장 가까운 시기에서 태太로 시작하는 중국연호 찾음. 대부분의 학자 주장, 결국 임나일본부 설을 뒷받침 하는 근거
- [남송 태시 4년]인 468년
미야자키, 동진 태화 4년 설 부정
한국 학자들의 해석
※태화=백제 고유의 연호로 보는것이 일반적
- 태화=근초고왕의 연호
372년 주장, 이병도
- 태화=전지왕의 연호
408년 주장, 손영종
- 태화=무령왕의 연호
504년 주장, 연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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