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와의 전쟁에서 대승리는 독일의 산업화에 큰 날개를 달아주었다. 독일의 산업혁명에서 경제성장을 주도한 것은 석탄산업과 철강공업이었기 때문에 통일 과정에서의 알자스-로렌 지방의 합병은 큰 성과였기 때문이다. 또한 영국으로부터 수입한 벳세머법은 독일에 지대한 영향을 주어 철강공업의 면목을 일신시켰고, 김광수 저, 『독일근세경제사』, 숭실대학교출판부, 1996, 192쪽
원재료인 철강석이 신 영토 알자스-로렌으로부터 막대한 양이 채굴되어 철강공업이 무서운 속도로 확장되었다. 전쟁의 승리로 얻은 배상금의 유입도 공업화를 위해 재투자되었다. 이 전승으로 인한 막대한 배상금의 유입을 경기를 자극하여 유례없는 세계적인 붐을 조성하였다. 이것으로 수년간 764개의 회사가 새로이 설립되었고, 30억 마르크의 산업 투자를 보았다. 앞의 책, 192쪽
석탄산업과 철강공업뿐만이 아니라 섬유공업도 발전하였지만 영국과 경쟁할 수 있을 만큼 발전하지는 못하였다. 또 1870년 이후의 독일의 공업발전에 있어서 화학공업과 전기공업은 더욱 두드러지게 발전하였다. 독일공업의 급속한 발전은 앞에서도 간략히 언급되었지만 1871년 새로운 독일제국의 성립으로 경제적인 통합이 완성되었고, 통일적인 경제개혁을 통해서 공업발전의 새로운 기반이 조성되었던 것이 제일 중요한 이유이고, 중요한 제도개혁들도 있는데 즉, 1873년의 통화법에 의해서 마르크라 신화폐단위로 되었으며, 금본위제의 도입에 의해서 독일의 화폐제도가 영국을 비롯한 자본주의 제국과 같게 되었다. 1875년에는 프러시아은행을 흡수한 제국은행이 국립으로 설립되었으며, 1914년까지 몇몇 주립은행을 제외한 모든 은행의 발권권을 집중하였다. 그 밖에 중요한 경제적 개혁으로는 상표법(1874)과 특허법(1877), 그리고 1879년에 보호관세가 도입되었다. 이러한 통일운동의 결과로써 영국이 1세기 간에 걸쳐 이룬 산업혁명을 독일은 반세기만에 완성했다.
3) 19세기 대불황
자본주의 축적에 따른 공황이 1825년 영국의 면직동업에서 최초로 발생한 후 대체로 10년 주기로 발생하였는데, 1870년대 이후에 발생한 세 차례의 세계적 공황은 그 이전과는 달리 침체-회복이 상대적으로 길었고, 호황기가 짧았기 때문에 대불황으로 불리고 있다. 이러한 대 불황은 수년간 지속된 대호황으로 각 기억들이 기계 설비를 대폭 교체하고 확충하는 등 고정자본을 급격히 늘린 결과였다 김준호 저, 『경제사』, 나남출판사, 2003, 339쪽
이 같은 불황은 기술개선과 생산 집중을 조성하는 카르텔 운동과 거대독점의 결성이 나타나게 하였다. 앞에서 독일의 산업화의 특징에서 나온 전승으로 인한 막대한 배상금의 유입이 경기를 자극하여 세계적인 붐을 조성하였듯이
서정익 저, 『세계 경제사』, 혜안출판사, 2005
김준호 저, 『경제사』, 나남출판, 2003
김광수 저, 『독일근세경제사』, 숭실대학교 출판부, 1996
빌프리트 펠덴키르헨, 『지멘스- 작은 공장에서 세계적 기업으로』, Siemens AG, 1997
윌리엄 카 저, 『독일근대사』, 탐구당, 1998
이혜령 외 16몀 저, 『유럽 바로 알기』, 지식의 날개, 2006
이대헌 논, 『1890~1914년 시기 루르지방 철강 산업의 발전과 그 의미』, 「高大史學會」42호,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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