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여년간의 몽고간섭시대는 민족사상 뼈아픈 시련기의 하나이지만 바로 이 시기에 국난과 사회모순을 깊이 체험하고 자라난 향촌의 신세대가 뒤에 조선왕조를 건국하는 사대부층이 되었다는 것을 유의해야 한다.
다만, 조선왕조의 건국이 기본적으로는 고려사회의 자체적 성장의 한 결실이면서도, 여기에 국제정세의 변동이 작용하였음을 간과할 수는 없다. 그것은 원 명의 교체는 고려사회의 신흥세력이 구질서를 타파하고 신질서를 수립하는 데 있어서 유리한 환경적 조건으로 작용하였으며, 유리한 조건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여 나간 데서 새 왕조의 건설은 가능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 국제정세의 변동이 조선왕조의 자체성장에 역기능적으로 작용한 면이 있다는 것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명과 조선은 다같이 몽고의 간섭으로부터 해방한다는 공동목표 아래 서로 친화할 수 있는 입장에 있으면서도 일단 몽고 세력이 후퇴한 다음에는 만주 요동지역의 점령을 둘러싸고 첨예하게 대립되었다.
명과 조선은 다같은 신흥국가의 패기로써 요동 지역을 선점하려 하였으나, 결과는 조선 측의 양보로 끝나고 말았던 것이다. 조선보다 20여년 앞서서 국가체제를 정비한 명의 압력은 한민족의 성장에 불리하게 작용하였다. 그렇지만 신라의 북방구토를 수복하려는 의지가, 고려 조선의 건국을 전후하여 집요하게 추진된 것은 특기할 사실이다. 이같은 북진정책이 그나마 조선초기에 압록강 두만강선의 확대된 국토를 확보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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