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양반전
1-1. 양반전의 창작 배경
1-2. 연암의 사상적 변천과 에 나타나는 사상
1-3. 연암 박지원의 문학론과 문체
1-4. 세부 고찰
1-5. 결론
2. 허생전
2-1. 구조와 사상
2-2. 대화 중심의 서사.
2-3. 인물
2-4. 결론
3. 호질
3-1. 작자 문제
3-2. 의 작품구조와 주제의 양면성
3-3. 결론
나가며
연암 박지원은 1737년(영조 13년)에 한양에서 출생하였다. 연암의 집안은 대대로 벼슬이 높던 명문대가였으나 그는 조실부모하여 조부 박필균의 손에서 길러졌다. 조부가 죽고 난 후부터 그의 곤궁한 삶이 시작되었다. 연암은 50 세에 친구인 유언호의 천거로 첫 벼슬을 하기까지 재야의 선비로 지냈다. 그는 조선 후기 이용후생학파의 거두로, 조선 후기 사회의 모순을 타파하고자 개혁을 주장했던 실학자이자 뛰어난 문인이었다.
연암이 살았던 18세기 조선 사회는 도시와 농촌에 걸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고 있던 시기였다. 정치적으로는 사대부들의 관권쟁탈(官權爭奪)이 극심해지면서 벌열(閥閱)이 형성되었고 대다수의 양반들이 몰락하는 상황이었다. 권기순, 1987, 「박지원의 문학세계 고(考)」, 동국대학교 석사 학위 논문 16쪽
대다수 몰락한 양반들은 정치적 경제적 기반을 확보하지 못한 채 경제적 빈곤에 허덕이고 있었다. 또한 사실상 지배계층으로 재진입하기에 불가능한 현실 속에 처해 있었다. 그들은 뛰어난 학문적 소양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희생양이 되어 정치에 참여하는 길이 현실적으로 봉쇄되어 있었던 것이다.
사회 경제적으로는, 사농공상(士農工商) 중 최하층인 상인계급이 자영농, 경영형 부농의 성장과 더불어 전문적 상인층으로 출현하고 그에 따라 그들의 사회적 지위와 인식이 서서히 부상하게 되었다. 반면에 오랜 동안 각종 특권을 누리며 평민(平民)들의 추앙을 받아 오던 양반은 그 자체의 수적 증가로 말미암아 지위가 상대적으로 격하되었다. 문제는 대다수 농민의 삶과 몰락한 양반은 생존을 위협받는 지경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벌열을 형성한 지배층은 불법적으로 토지를 겸병하여 대토지를 소유, 확장하기에 골몰하고 있었다. 이에 대다수 농민은 땅을 잃고 임노동자나 유민으로 전락하였다. 게다가 국가의 재정수입이 공평하게 실시되지 못하여 가난한 농민은 갖가지 착취에 시달렸고 농촌은 피폐해져 갔다.
문화적으로는 지배 이념으로서의 성리학(性理學)이 그 한계에 봉착하고 있었다. 이미 청(淸)에서는 실증적으로 학문을 연구하고자 한 고증학(考證學)이 발전하고 있었지만, 오히려 조선의 지배층은 성리학을 교조적(敎條的)으로 만들어 주자의 비판자를 사문난적(斯文亂賊)이라 하여 탄압하는 등 성리학적 사상에 입각한 사상 통제를 강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었다.
민족의 생활을 지리멸렬로 만든 것은 위에서 언급한 사회경제적 토대뿐만이 아니었다. 물적 토대가 인간의 의식을 결정짓기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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