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대사] 고구려유민의 동향
우선 진흥왕이 황초령과 마운령을 정복하면서 그들이 살던 지역이 자연스럽게 신라에 병합되면서 귀속된 사람들이 있다. 또한 고구려가 패망하기 직전인 666년에 연정토가 성읍 12개와 백성 3500여호를 이끌고 신라에 투항할 때 함께 간 자들이 있다.
이들은 670년 안승이 보덕왕에 봉해지면서 신라의 당나라 축출과정에서 신라를 도와 고구려 부흥운동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신라의 군 체재인 9서당(誓幢)에 참여하여 고구려 출신으로만 이루어진 부대를 조직하는 등 신라에서 고구려 출신의 독자성을 인정받았다. 대개 이들은 신라 한산주(漢山州)에 속했으며, 신라에 대항하기보다는 대부분 일반 백성으로 편입되었다. 고구려 부흥군이 673년 호로하 전투에서 당군에게 패하자, 평양 일대의 고구려 유민들이 대거 신라에 들어가면서, 부흥운동이 일단락 되고, 고구려 유민의 신라 유입도 마무리 된 것으로 보인다.
2. 당의 내지로 옮겨간 사람들
이들은 만리장성 이남으로 옮겨진 집단이다. 당은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여러 차례 고구려 사람들을 끌고 갔다. 첫 번째는 645년 안시성 전투에서 당이 패퇴할 때 요동지방의 고구려인 7만 명을 강제로 당으로 끌고 간 일이다. 이들은 고구려 멸망 후 당으로 끌려온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당나라 각지로 분산되어 거주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들 중 당에 항복한 고구려 장수인 고연수, 고혜진, 손대음 등은 당에서 높은 벼슬을 받고 고구려 침입에 앞장서는 배신 행위를 하기도 하였다. 또 고구려군 지휘관급 3천여 명은 개별적으로 당나라 군대에 다시 배치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대다수는 노예로 전락하는 등 비참한 대우를 받으며 전쟁포로로 끌려갔다.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5, 1996.
김용만, 『고구려의 발견』, 바다출판사,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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