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대사] 신라의 호국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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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고대사] 신라의 호국의식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시대적 배경
2. 대왕암
3. 감은사지
본문내용
1. 시대적 배경
불교를 받아들여 꾸준히 국력을 키워온 신라는 김유신과 김춘추에 이르러 삼국 통일을 향한 첫 발을 내딛고, 김춘추 곧 무열왕의 아들인 문무왕 8년(676)에 이르러 결국 삼국 통일을 이룬다. 삼국 통일에 당의 세력을 끌어들인 신라는, 결국 당의 속셈이 신라를 돕는 데 있지 않고 신라를 통해 삼국을 한꺼번에 정복하려는 것이었음을 알아채고 당의 세력을 몰아내기에 이른다. 따라서 당시 신라인들의 호국 정신은 매우 드높았으며, 호국 성격을 띤 불교는 사회 전반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불교에 대한 높은 관심과 호국 의지는 각종 불사를 이루는 원동력이 되었다.

2. 대왕암
토함산 뒤쪽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대종천을 이루고 그 물줄기가 동해로 흘러드는 감포 앞바다. 이곳 해안에 서면 바다 쪽으로 약 200m 떨어진 곳에 바다 경치를 돋우는 아담한 바위섬이 눈에 들어온다. 문무왕의 산골처(散骨處) 혹은 수중릉으로 알려진 대왕암이다.
멀리서 보는 대왕암은 평범한 바위섬이지만, 가까이 다가가 보면 바위 한가운데가 못처럼 패어 있고 둘레에 자연 암석이 기둥 모양으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세워진 모습이다. 한 변의 길이가 약 3.5m되는 못 안에는 거북이 등 모양의 길이 3m, 폭 2.2m의 돌이 얹혀져 있다. 못 안의 물은 돌을 약간 덮을 정도이며, 거센 파도에 아랑곳없이 항상 맑고 잔잔히 흐르도록 되어 있다. 동서남북 사방으로 트인 십자형의 수로를 통하여 동쪽으로 들어온 물이 서쪽으로 난 수로의 턱을 천천히 넘어 다시 바다로 흘러나
참고문헌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엮음, 『답사여행의 길잡이 2-경주』, 돌베개, 1994.
김부식 지음, 이병도 역주, 『삼국사기』상, 을유문화사,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