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원폭투하가 정당하지 않은 근거
1) 일본의 전쟁수행능력 상실과 종전협상 타결 움직임
2) 사전경고의 부재와 민간인의 피해
3) 미국의 대소련 견제의도
4) 미국 내부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반영한 결정
Ⅲ. 결론
참고문헌
1) 일본의 전쟁수행능력 상실과 종전협상 타결 움직임
먼저 원폭투하는 당시 일본이 사실상 전쟁수행능력을 상실한 상태였고 이에 종전을 위한 협상을 원했다는 점에서 정당하지 않다. 원폭 투하 이전 전쟁 상황에서 군사적 상황은 연합군 측에 유리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태평양전 초기에 히틀러와의 유럽 전투에 군사력을 집중했었다. 하지만 5월에 독일이 항복하자 미국은 유럽의 군대를 태평양으로 재배치할 수 있게 되었고, 그만큼 큰 군사력을 일본에 행사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태평양의 여러 섬들에 대한 점령 작전이 성공을 거두어 일본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교두보가 확보되고 있었고 마닐라 함락 뒤 2~3월의 한 달간에 걸친 이오지마 전투 끝에 미국의 해군과 공군은 도쿄에서 700마일 이내의 거리에 위치하게 되었다. 7월 초가 되면서 북쪽으로 진격하던 부대는 오키나와를 장악할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일본의 해군과 공군은 거의 전멸한 상태가 되었기 때문에 이오지마와 오키나와, 도쿄 사이에는 군사적 장애물이 없었다. 미 공군과 해군의 공격으로 인해 일본은 인도차이나로부터의 물자공급을 차단당한 상태였고, 마리아나 제도에서 B-29기는 일본도시와 공장을 파괴하고 있었다.
군사문제 전문가 페이프(Robert A. Pape)는 당시 일본이 군수품과 연료에서부터 훈련받은 전투요원까지 모든 것이 부족한 상황이었다고 설명하면서, "미국이 전략폭격이나 원자탄을 사용하지 않았을지라도 일본의 군사적 상황이 너무 열악해서 일본 지도자들은 침공 이전에, 아마 거의 비슷하게 1945년 8월 즈음에 항복했을 것이다." 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페이프의 주장은 일본이 군사적으로 패배가 확실한 상황이었다는 사실을 재확인시켜주고 있다. 아래의 표는 일본이 미국에 대해 군사적으로 절대적 열세였음을 구체적 수치를 통해 보여준다.
나종남․박일송,「트루먼 행정부의 태평양 전쟁 종전방안 논의:원자폭탄 사용 결정 1945 년 6월부터 8월까지」, 육군사관학교, 2007.
이완범,「트루먼과 동북아 냉전:미국의 원폭실험 성공에 따른 소련의 대일전 참전배제 구실, 1945년 4월~1945년 8월」,『미국사연구 제21집』, 한국학중앙연구원, 2005.
Jonathan Parshall, Why Japan Really Lost The War, Imperial Japanese Navy Page.
(http://www.combinedfleet.com/economic.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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