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0~1880년까지 영, 러는 그 동안의 동아시아지역에서의 대립에서 당분간의 자중으로 정책을 변경하게 되어 동아시아는 일시적인 힘의 균형상태를 이루었다. 그러나 1870년대 조선은 민 황후와 대원군의 대립격화로 힘의 축적을 하지 못하였으며, 이 기간 동안 극동3국 중 일본만이 근대화에 성공하였다. 이에 일본은 조선침략을 계획하였으나 러시아와 영국, 청의 간섭을 배제하여야 하는 과제가 있었다. 우선 일본은 대만 침략을 통해 청의 방어력을 분산시켜 조선에 대한 보호를 못하도록 하고 러시아와 영국간의 대립을 이용하여 영국으로 하여금 일본의 조선 침략을 용인함으로써 러시아를 견제토록 하였다.
이러한 영, 러 청의 간섭을 극복한 일본은 이후 운요호 사건을 통해 강화도 조약을 체결하게 된다. 이후 조선의 대외정책은 쇄국이냐 개국이냐를 떠나 개국을 함에 있어 어느 정도 수위로 할 것인가가 문제가 되었다. 이것이 1873년 고종의 친정과 대원군 하야 이후 새로이 실력자가 된 민 황후의 과제가 되었다.
2. 조선의 개국이라는 민 황후의 선택-조선책략
1) 개국에 대한 기본 입장
1873년 친정에 나선 고종은 개항, 개화가 불가피하다는 판단이래 1876년 개항을 단행하여 1880년부터 개화정책을 펴기 시작하였다. 1880년 수신사 파견을 통해 일본의 개화실상을 확인한 다음 개화를 주도할 관서로 통리기무아문을 신설하고 1881년에는 일본에 신사 유람단, 중국에 영선사를 각각 파견하여 신문물 수용을 위한 대책을 적극적으로 강구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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