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공공예술
Ⅱ. 세계 미술사 상황
Ⅲ. 멕시코 시대 상황
Ⅳ. 멕시코 벽화 운동의 태동
Ⅴ. 멕시코 벽화 운동의 정립
Ⅵ. 멕시코 벽화의 확산과 전파
Ⅶ. 멕시코 벽화 운동의 전환
Ⅷ. 멕시코 벽화 운동의 쇠퇴
Ⅸ. 멕시코 벽화 운동의 의의
멕시코 벽화 운동의 특징은 한 마디로 하면, 사회가 예술을 만들어 냈다고 할 수 있다. 사회가 변하기를 종용하는 예술이 아닌, 사회의 필요성에 의해 만들어진 예술인 것이다. 당시 멕시코는 독재 정권이 들어서서 새로운 시도를 하려는 예술가들을 탄압하고 있었으며, 식민 시대의 잔재인 유럽, 특히 스페인의 모더니즘을 그대로 답습하고 이들에게 특권을 주고 있는 종속적이고 노예적인 상태였다. 이에 아카데미 교육을 받으면서 사실적 표현 기법과 재현적 수법을 배운 리베라 조차도 이에 반대하게 되며, 아틀 박사나 시케이로스 같은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전시회 등을 통해 이러한 정부의 만행에 저항하였다. 이에는 호세 포사다 같은 삽화가도 한 몫 했는데 이러한 삽화도 이미 문맹률이 90%에 달했던 멕시코에 있어서 확실한 공공예술로서의 역할을 해내고 있었다. 디에고 리베라는 예술은 세상과 또 모든 시대와 소통해야 하며, 대중이 더 나은 사회를 구성하는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그가 초기에 하던 입체주의 미술은 이에 적합하지 않다고 말한다. 혁명 이후의 정부는 이을 예술가들을 정책적으로 후원하여, 멕시코 벽화 운동의 부흥을 가져온다. 바스콘셀로스는 국립예비학교, 볼리바르 계단극장, 치코 학교 등에 장소를 마련하는 등의 직접적인 후원을 한다.
Ⅳ. 멕시코 벽화 운동의 태동
초기의 멕시코 개인 예술가들은 서양 미술의 전통을 따르고 있었다. 리베라도 초기 작품인 에서는 입체주의를 보여주고 있으며, 고야 등의 모작을 했고, 많은 주류 예술가들은 르네상스 전통을 답습하고 있었다. 하지만, 멕시코 미술계는 표현주의로 흐르지 않고 벽화 운동으로 흐르게 된다. 이에는 인물화와 역사화들이 많이 등장해서 서구 미술사의 흐름과는 다른 길을 걷게 된다. 1910년에 일어난 멕시코 혁명은 멕시코 벽화 운동에 큰 영향을 끼친다. 많은 예술인들과 지식인들이 혁명을 경험하게 되며, 이런 과정에서 현실적이 되고 사회주의 사상을 띠게 된다. 더 이상 부주아들만을 위한 예술이나 화실 안에서의 예술을 하지 않고, 대중들과 농민, 노동자들을 위한 실제적인 기능을 하는 예술을 하겠다는 생각에서 벽화 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게 된다. 시케이로스도 화실 안에서 그리는 예술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라며 비판한다. 과연 예술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화실 안에서의 예술은 유용한가 하는 질문은 아직도 유효하다.
20세기 라틴아메리카 미술 / 에드워드 루시-스미스 / 시공사 / 2003
프리다 칼로, 디에고 리베라 / 클레지오 / 다빈치 / 2005
프리다 칼로 / 헤이든 / 민음사 /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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