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 무신의난
전개 - 무신정권의 변천과정
위기 - 정중부와 경대승의 대립
절정 - 63년간의 최씨 무신정권
결말 - 무신의 난 그 후..
이자겸의 난,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에 의해 동요되기 시작한 문벌 귀족 사회는 무신 정변에 의해 와해되고 만다. 무신 정변은 정치적 변동에 그치지 않고 사회 경제적 변혁을 수반한 까닭에 고려사는 이 사건을 분수령으로 하여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지고 있다.
이처럼 고려 시대의 전개에서 커다란 의미를 지니는 무신 정변의 발생 원인은
첫째, 의종의 실정과 시대 상황
둘째, 고려 귀족 정권의 문 무관 차별에 대한 무신들의 불만
셋째, 일반 군인들의 불만
첫 번째 원인이 된 의종의 실정에 대해 살펴보면 그는 왕실의 권위와 왕권 강화를 위한 시책의 실패하였고 말년에는 놀이와 연회, 각종 공사로 민심을 잃었다. 또한 귀족들이 주도하던 정치 상황이 문제였다. 당시 집권층들은 자신들의 이익만을 앞세웠기 때문에 정치 지도력을 상실하고 있었으며 왕권과 귀족 세력 간의 정치적 대립과 갈등은 왕의 권위를 더욱 실추시켰으며 귀족들 상호간의 대립 갈등은 정치적 구심점을 찾지 못하고 정치적 불안을 가중시켜 무신 정변 발생의 소지를 제공했던 것이다.
두 번째 원인이 된 문무관의 차별 대우를 살펴보면 제도적으로 무반은 정 3품인 상장군이 최고의 관직이며 그 이상의 승진이 어려웠고 군대의 최고 지휘 통솔권은 문신이 장악하고 있었다. 거란의 침입을 물리친 강감찬이 과거에 장원 급제한 문신이었고 여진 정벌의 윤관,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을 토벌한 김부식 역시 같은 예였다.
마지막으로 군인들의 불평을 들 수 있다. 군인들은 전시에는 말할 것도 없고 평시에도 노동력봉사에 동원되어 시달렸으며, 군인전도 제대로 지급 받지 못하여 그들의 불평, 불만이 누적되어 있었다.
이들은 상급 지휘관으로부터 "문관을 쓴 자는 비록 서리라도 씨를 남기지 말라." 는 행동 지침이 하달되었을 때 이에 호응하여 벌떼처럼 일어났다. 무신 정변은 일반 군인들이 누적된 불만을 가지고 있을 때 발발하여 이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성공할 수 있었다.
▶ 2. 무신정권의 변천과정
제1기는이고(1170~71)․이의방(1171~74)․정중부(1174~79)․경대승(1179~83)․이의민(1183~96)이 집권했던 약 30여 년간이었다. 이 기간 동안은 무인집권자들의 빈번한 권력투쟁과 그것으로 인한 집권자의 잦은 교체, 문신들의 반무인란 등으로 정권 자체가 안정 국면을 유지할 수 없었다.
이 시기 정치운영의 중심기구는 이전
한국사 이야기 6권(무신의 칼 청자의 예술혼). 이이화 지음. 도서출판한길사
http://kin.naver.com/browse/db_detail.php?10101&docid=158876
http://kin.naver.com/browse/db_detail.php?dir_id=110101&docid=275180
http://khistory.new21.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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