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중세사회] 무신정권기 민의 항쟁 -명종,신종대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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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중세사회] 무신정권기 민의 항쟁 -명종,신종대를 중심으로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무신정권기 민의 항쟁 발생의 배경

Ⅲ. 무신정권기 민의 항쟁
A. 농민이 주체가 된 항쟁
a. 조위총의 난
b. 망이․망소이의 난
c. 김사미․효심의 난
B. 노비가 주체가 된 항쟁
a. 만적의 난
b. 진주민란

Ⅳ. 무신정권기 민의 항쟁의 특징

Ⅴ. 결론

* 참고문헌
본문내용
Ⅲ. 무신정권기 민의 항쟁

A. 농민이 주체가 된 항쟁

a. 조위총의 난 (1172(명종2년))
무신정권기 본격적인 농민항쟁은 서북지역에서 일어난 조위총의 난으로부터 출발하였다. 서경유수․병부상서였던 조위총은 ‘나라의 정치를 함부로 하는 이의방과 정중부 등의 무인들을 제거하고 나라를 바로잡는다’는 명분을 내세워 반란을 일으켰다. 정부는 토벌군을 3군으로 편성, 파병하여 여러 번의 패전을 거듭한 끝에 반란 발발 2년째인 명종 6년에 겨우 민란을 진압하였다. 김창현 외 2인, 『고려 500년, 의문과 진실』 (김영사, 2001), 66쪽.
조위총의 난은 정치적 성향이 다분했던 조위총이라는 인물에 의해 반란이 시작되었지만, 진행과정에서 민란의 성격으로 변하였다. 조위총이 지휘자였다 하더라도 그 중심세력은 서북계 40여 성의 주민들이었기 때문에 민을 기반으로 한 농민항쟁의 성격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반란이 일어나자 중앙정부에서 반포한 조서에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방책에 힘쓸 것’이 명시되었던 점 역시 조위총의 난이 민들의 저항을 드러낸 농민항쟁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로써 항거운동이 완전히 진정된 것은 아니었다. 조위총의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관군이 항복한 자들을 ‘반적’이라 지목하는 한편 그 부녀자들을 겁탈함에 따라 이에 격분한 500여명의 장정들이 다시 반란을 일으켰던 것이다. 이 반란을 ‘여중의 반란’, 즉 ‘나머지 무리들의 반란’ 이라고 부른다. 이 ‘여중의 난’은 조위총의 난보다 민란의 성격이 강했다. 처음부터 반란의 주도층이 일반 농민이었기 때문이다. 명종 9년에는 서북면지병마사 이부가 서적유종들을 모두 살해한 사건을 빌미로 ‘서적 유종의 난’이 일어난다. 이 봉기는 이내 진압되었지만 조위총과 그 뒤를 이은 서북인의 항쟁이 거의 5년 동안 지속되었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밖에도 조위총군과 직접적인 관련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서적으로 알려진 무리의 크고 작은 봉기가 각지에서 있었다. 이와 같은 민란은 무신정권의 실정과 지방 관리들의 가렴주구에 대한 서북계 농민들의 항쟁이 끈질기게 계속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박용운, 『고려시대사』 (일지사, 2008), 535-537쪽.


b. 망이․망소이의 난 (1176(명종 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