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론
1.1 뇌천(雷川) 김부식(金富軾)과 그의 집안
1.2 김부식의 지위
2. 김부식의 사상과 문학관
3.1 삼국사기- 유교
3.2 김부식의 문체
4. 김부식의 시세계
결론
위에서 보면 17개의 문장 양식이 나타나 있고, 그 중에서 부(賦), 시(時), 기(記), 명(銘)과 같은 문예문(文藝文)이 40편이고, 나머지 90편은 실용문으로 나타난다. 이것들은 삼국사기와 함께 김부식의 문학세계를 알아볼 수 있는 기본 자료가 되는 것이다.
1.2 김부식의 지위
1096년(숙종 1) 과거에 급제하였으며 안서대도호부(安西大都護府)의 사록참군사(司錄參軍事)에 임명되었다가 직한림원(直翰林院)을 거쳐 중서사인이 되었다. 인종 초에 이자겸이 왕의 외조부이자 장인이라는 이유로 권력을 마음대로 하자 이를 저지하였으며, 이자겸이 제거된 뒤 1126년(인종 4) 어사대부가 되었다가 호부상서 한림학사승지를 역임하였다.
1130년 정당문학 겸 수국사로 승진하였고 이어 검교사공 참지정사가 되었으며, 1132년에 수사공 중서시랑동중서문하평장사(守司空中書侍郞同中書門下平章事)에 이르렀다. 당시에 묘청(妙淸) 등 서경세력이 천도를 주장하면서 난을 일으키자 원수로서 삼군(三軍)을 지휘하였으며, 출정하기 전에 먼저 개경에 있던 정지상(鄭知常)·김안(金安)·백수한(白壽翰) 등을 죽였다.
장기전을 벌이면서 1년 2개월 만에 반란군을 진압하였고, 그 결과 수충정난정국공신(輸忠定難靖國功臣)에 책록되고 검교태보·수태위·문하시중·판상서이부사·감수국사·상주국 겸 태자태보(檢校太保守太尉門下侍中判尙書吏部事監修國事上柱國兼太子太保)에 승진하였다.
1138년에 검교태사·집현전대학사·태자태사(檢校太師集賢殿太學士太子太師)를 더하였다. 이어 함께 전공을 세운 윤언이(尹彦頤)와 개인적인 불화가 생겨 그가 칭제건원(稱帝建元) 칭제건원은 황제로 칭하고 독자적 연호를 사용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선 고려 광종과 대한제국의 고종과 순종이 사용했다고 할 수 있다. 고려 광종같은 경우 황제로 칭하고 연호를 광덕, 준풍을 등을 사용하였으며 고종과 순종 역시 황제로 칭하고 연호를 광무, 융희 등을 사용함.
을 주장한 것을 탄핵하여 양주방어사(梁州防禦使)로 쫓아냈다가 뒤에 사면되자, 정치적 보복이 두려워 1142년에 사직하였다.
인종은 그의 사직을 허락하면서 동덕찬화공신호(同德贊化功臣號)를 더하여 내렸다. 관직에서 물러난 뒤 인종의 명령을 받아 《삼국사기》를 편찬하면서 체재를 작성하고 사론(史論)을 직접 썼으며, 1145년에 완성하였다. 한림원에 있을 때에는 사륙변려문체(四六騈儷文體)에서 당·송 시대의 고문체(古文體)를 수용하려 하였다.
『고려도경(高麗圖經)』의 저자 서긍(徐兢)은 그를 고금에 밝고 글을 잘 짓는 박학강식한 사람이라고 평하였다. 의종이 즉위한 뒤 낙랑군 개국 후에 봉하고 『인종실록』을 편찬하게 하였다. 죽은 후 1153년 중서령이 추증되었으며 인종 묘정(廟庭)에 배향되었다.
2. 김부식의 사상과 문학관
김부식의 문학관을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는 동문선 제45(東文選卷之四十五)권 에 「사위추밀칭예계(謝魏樞密稱譽啓)」라는 글이 있다. 그 일부를 소개하면 이러하다.
· http://www.seelotus.com/gojeon/gojeon/hanmun/hansi-outline.htm
· http://100.naver.com/100.nhn?docid=13425
· http://100.naver.com/100.nhn?docid=31032
· 한국고전번역원 : http://www.minchu.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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