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전] `신주`편의 내적 고찰
2. 본론
3. 결론
먼저 혜통과 명랑의 사적을 통해 밀교의 활약상을 정리하고, 편에 나타난 ‘주문’의 역할과 나․당의 외교적 관계를 살펴보겠다.
(1) 혜통과 명랑을 통해 본 밀교
미리 밝혀두지만, 편에 등장하는 밀본법사의 이야기를 제외시킨 이유는 길지 않은 이야기 전개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가 극히 미약하였기 때문이다. 다만, 그의 이야기를 통해 각 신승(神僧)의 시대적 등장 순서를 유추해본다면 (밀본)→명랑→혜통으로 이해되었으므로 혜통과 명랑 전에 신라사회에서 밀교의 전설적 존재로 자리했거나 혹은 명랑이 거사의 모습으로 나타날 때 밀본법사라는 가명을 쓰지 않았나 하는 추측을 해본다.
1) 혜통과 명랑의 출신배경
- 혜통 : 신라인으로 높은 벼슬을 지낸 집안이 아니다. 다만, 그가 승려가 되기 전에 살던 집의 위치가 알려져 있다. 출가 전 행적에서 그의 활달한 성격을 엿볼 수 있고, 법도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환경에서 자라났음을 알 수 있다. 수달에 관한 일화는 그가 출가한 계기가 되고, 이름을 혜통으로 바꾸었는데 이것을 직역하면 ‘사랑이 두루 미치다’ 이다. 김원중 국역『삼국유사』 p. 503-509
- 명랑 : 신라인으로 이름과 자가 밝혀져 있고, 부모의 출신과 형제에 대한 언급과 명랑의 태몽이 금광사 본기에 기록이 남아있다. 어머니가 진한의 진골 소판(蘇判:3급벼슬이름)무림(茂林)딸이며 자장법사의 누이동생이다. 이른 바 승려집안에 태어나 특별한 의식의 형성없이 승려의 길을 걸었다. 같은 책 p.509-512
2) 혜통과 명랑의 유학
둘다 당(唐)나라로 유학을 갔는데, 혜통은 분명치 않으나 665년 신라로 돌아오기 이전으로 머문 기간을 추정해볼 수 있고 명랑은 632년에 가서 635년에 신라로 돌아왔다. 명랑과 비슷한 시기에 언급되는 의상은 650년에 당나라로 유학을 간 것 같은 책 p.462-468
을 볼 때, 먼저 유학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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