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문학] 홍길동전 작품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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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전문학] 홍길동전 작품분석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도입

2. 홍길동전의 창작배경

3. 홍길동전

4. 홍길동의 한계

5. 결론


본문내용
ⓛ 사회적 배경 - 조선시대 신분제도의 모순 : 서얼과 피지배층
조선시대의 서얼은 보통 양반의 첩자녀와 그 자손들을 의미하였지만 그 이외에도 사족인 아버지와 사족이 아닌 어머니 사이에 출생한 자와 그 자손 모두를 통칭하는 넓은 개념으로 인식되기도 하였다. 때문에 서얼은 부계와 모계의 신분등급이나 직역에 따라 양반에 해당하기도 하고 중인ㆍ서리와 평민, 혹은 천인신분인 자도 있었다. 16세기 말과 17세기 전기에 걸친 왜란과 호란을 겪으면서 가족의 이산으로 많은 사족가문에서는 본처가 있는데도 처를 얻어 중혼관계에 놓인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때 본처와 후처가 모두 사족인 경우는 어느 한쪽이 서얼이 되었는데 후처의 자손이 적통을 계승하고 선처(先妻)의 자손은 서얼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고려시대의 서얼차대는 신분질서의 문란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천민의 혈통이 섞인 자들의 사족집단 편입을 거부하기 위해서 一賤則賤의 원칙을 확립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서얼차대는 여기에 禮無二嫡의 유교적인 원칙이 추가되었다. 때문에 아버지와 어머니 계통이 모두 사족일지라도 한 사람의 처 이외의 자손은 서얼로서 차대를 받았다. 특히 이들은 관직이나 재산상속, 제사, 혼인에서 차별대우를 받았다. 우선 관직에 있어 조선시대의 서얼은 양첩 자손이건 천첩 자손이건 간에 문과와 생원ㆍ진사시의 응시자격이 박탈되어 청요직에 나갈 수 없었다. 만약 무과에 급제하거나 음직으로 관료가 되더라도 품계에 한계가 있었다. 또는 기술관이 되거나 중앙과 지방의 잡직을 얻어 사족양반으로부터 차별을 받았다. 그 외의 서얼들은 무직상태로서 빈곤과 질병으로 외롭고 괴로운 삶을 살아갔다. 그리고 서얼은 재산과 제사에 있어서도 차별을 받았다. 서얼들은 가문 내에서 '호부호형'을 할 수 없고 부모의 재산은 주로 적자녀에게 상속되었기 때문에 서자는 적자의 1/7~1/10을 상속받는데 불과하였다. 또한 서얼들의 혼인은 처음에는 천첩자녀에 한하여 양반과 혼인할 수 없도록 하였으나 그 후 많은 천첩이 신분상승을 이루어 양첩자손과 천첩자손의 구분이 애매하여졌다. 결국 대부분의 서얼은 양반과 혼인하지 못하게 되었다.
참고문헌

◎ 참고문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복규(2004) 「우리 고소설 연구」 역락
정상진(2000) 「韓國古典小說硏究」 三知院
허경진(2002) 「허균평전」돌베개
http://www.seelotus.com/goje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