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론
1. 신재효의 생애
2. 신재효와 판소리의 만남
(1) 신재효와 판소리 만남의 내ㆍ외적 배경
(2) 판소리 광대의 후원자이자 지도자 신재효
(3) 판소리 이론가이자 논평가 신재효
(4) 사설 개작자, 집성자 혹은 창작자로서의 신재효
3. 작품세계 - 신재효 판소리 사설의 특징
(1) 합리주의적 세계인식
(2) 인간주의적 세계인식
(3) 신재효 본의 특징 - 양반과 서민의 접점
4. 신재효 판소리 본에 대한 평가
▶결론
◉ 참고문헌 ◉
판소리 6마당을 개작하고 단가ㆍ가사 등 수십 편에 이르는 작품을 남긴 동리(桐里) 신재효(申在孝)가 살았던 시기는, 홍경래란(1811~1821)으로부터 갑신정변(1884)까지이다. 격변의 시대만큼이나 문제적인 문학사적 성취를 남긴 그는 지방관청의 서울 일을 대신 해주던 경주인(京主人) 노릇을 하다가 전북 고창에 내려와 관약방(官藥房)을 했던 신광흡의 아들로 고창에서 태어난다. 아버지의 출신 계층과 그 성격이 비슷한 지방 향리(이방,호장)으로 살아간다. 신재효는 아버지가 물려준 재산과 자신이 모은 재산으로 천석을 추수하고 오십 가구가 넘는 식솔을 거느린 부호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 그는 이런 경제적 기반을 바탕으로 해서 19세기 후반 활동했던 판소리 광대의 후원자로서, 전래의 판소리 사설을 가다듬어 정리한 개작자로서, 판소리의 법례를 새롭게 만들어 보고자 한 이론가로서 나아가 판소리의 방향을 다각도로 모색한 연출가로서의 면모를 두루 확인 하는 삶을 살아간다.
2. 신재효와 판소리의 만남
(1) 신재효와 판소리 만남의 내․외적 배경
① 한 시대의 특별한 개인- 내적 배경
신재효가 향리의 직임을 수행했던 고창 지방은 향반의 행세가 대단했던 곳이며, 신재효 집안은 그 명망과 명목적인 신분상승에도 불구하고 향리집안에 묶일 수 밖에 없었던 분위기가 지배했던 지방이다. 이러한 현실은 남다른 자질을 지니고 자아의식이 강했던 것으로 전해지는 신재효에게 엄청난 좌절감을 던져 주었을 터이다. 이러한 심정은 “사나이로 조선에 생겨 장상댁에 못생기고 활 잘쏘아 평통할까 글 잘한다 과거할까”라는 에서도 잘 나타난다. 그의 출신 배경에서 오는 심리적 좌절감이 판소리 지원활동과 사설의 개작ㆍ정착작업을 하는 계기가 되었으리라 보여진다. 신분적 한계에 좌절해야 했던 그의 자아의식이 왕족과 양반사대부가 향유했던 공연예술의 하나인 판소리를 통해 고상한 가치를 실현하그 그들과 대등한 품격을 유지함으로써 훼손된 자부심을 회복하려는 행위로 이해할 수 있다.
신재효본 적벽가의 특성 ,강한영 ,1990,한글학회
신재효의 허두가에 나타난 문제의식 ,장석규, 1994, 문학과 언어연구회
신재효의 판소리를 재론한다 ,정출헌, 1994,역사비평
신재효 연구, 서종문 ㆍ정병헌, 1997, 태학사
한국고전문학작가론, 1998, 소명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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